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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주요 은행들이 올해 총 6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없앤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이후 인수합병(M&A) 거래가 폭증했을 당시 과도하게 증원한 인력을 감축한 것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더 큰 규모의 정리 해고를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현지시간) 은행별 공시와 자체 보고 등을 수집한 결과를 인용해 "올해 세계 최대 은행 20곳이 최소 6만1905개의 일자리를 줄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해당 은행들이 2007~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4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감축한 이후 최대 규모다.
FT는 "소규모 은행이나 소규모 인력 감축은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업 부문의 전체 해고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금융 리서치 업체인 코얼리션 그리니치에 따르면 대형 투자은행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전체 인력 대비 4%의 직원을 해고했다. 코얼리션 그리니치는 "하반기에 더 많은 감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전 세계 은행들의 감원 규모는 대부분 총 직원의 5% 내외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2015년, 2019년 등과 같이 은행권에서 대규모 실직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당시엔 기록적인 초저금리로 인한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가 해고 원인으로 꼽혔다. 반면 올해 정리해고의 대부분은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기록적인 속도로 긴축(금리 상승)에 나서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FT는 지적했다.
주요 은행들은 코로나19 이후 M&A, 기업공개(IPO) 등이 폭증해 인재 쟁탈전까지 벌이면서 인력을 대폭 확충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고강도 긴축으로 자본 시장이 급랭하고 거래 수수료가 급감하자 수익성 보전을 위해 해당 채용을 고스란히 취소했다는 설명이다. 금융 서비스 헤드헌팅 회사인 실버마인 파트너스의 리 태커는 "현재 대부분의 은행에서 안정성, 투자, 성장 중 그 어떤 것도 감지되지 않는다"며 "더 많은 감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규모로 감원을 한 은행은 스위스 UBS다. 올해 3월 경쟁사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한 뒤 1만3000여명을 해고했다. 중복 직책을 없애고 크레디트스위스를 위기로 몰아넣은 사고 부서들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리해고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 웰스파고가 1만2000여명의 인력을 줄였다. 웰스파고는 지난 3분기에만 임직원 퇴직 비용으로 1억8600만달러를 지출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최근 찰리 샤프 웰스파고 최고경영자(CEO)는 "추가 퇴직 비용으로 10억달러를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수만 개의 추가 일자리 감축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외에는 씨티그룹(5000명), 모건스탠리(4800명), 뱅크오브아메리카(4000명), 골드만삭스(4000명), JP모간(1000명) 등이 연례 정리해고 프로그램에 따라 인력을 줄였다. 해당 은행들의 연례 해고 프로그램은 코로나19 이후 은행 호황기를 건너뛰고 몇 년 만에 재개됐다.
올해 감원이 없었던 대형 은행들의 경우 작년 이전까지 이미 몇년 간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선제적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HSBC와 코메르츠방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까지 2년동안 정규직 직원 7700명(전체 인력 대비 10%)을 해고한 이탈리아 유니크레디트도 올해는 추가 인력 감축 발표를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전문가 예상치보다 더 적은 규모로 인력을 줄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감원 폭이 수익 감소폭에 비해 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코알리션 그리니치의 가우라브 아로라 글로벌 분석 책임자는 "새해에 자본 시장이 회복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부 은행은 특히 미주 지역의 경우 미소진자금(드라이파우더)이 많이 쌓여 있어 정리해고를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런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은행들의 일자리 전망은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2024년 한 해는 2023년의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