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엔 공채도 파벌도 없다. 쿠팡이 공채를 뽑지 않는 것은 한국 기업 특유의 조직 문화에 물들지 않기 위함이다. 쿠팡은 대부분의 직원을 경력자로 채운다. 15계명에 근거해 인재를 선발한다. 일반 직원은 4번, 임원은 6번의 면접을 거쳐야 한다.
한 번의 인터뷰 시간은 1시간이다. 거의 모두가 ‘프로페셔널’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좋게 보면 일 중심의 조직이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무한 경쟁의 정글이다.
창업 후 올해까지 쿠팡의 13년은 한국 기업사(史)에서 매우 특별하다. 대기업(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 기준)이 과점적 지위를 갖는 영역에서 신생 기업(스타트업)이 불과 13년 만에 1위인 이마트를 꺾었다. 이처럼 단기간에 꼴찌가 정상을 차지한 사례는 적어도 국내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이 이 같은 ‘특이 케이스’를 만들었을까. 조직론 전문가들은 조직 문화의 차이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동종 업계 전문가 안 뽑은 쿠팡
15계명의 첫 번째는 ‘고객이 와우(Wow)를 외치도록 하라’다. 쿠팡의 존재 이유다. 나머지 14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 가에 관한 원칙이다.△리더는 전체 그림을 보고 오너처럼 결정한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단 하나의 전투에만 집중한다 △깊게 디테일에 뛰어들어라 △결함을 고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개선을 행하라 △좋은 의사 결정 뒤엔 건설적인 의견 대립이 있었음을 명심하라 △광적으로 단순화에 집착하라 △인재 채용과 배치로 조직 역량을 키워라 △리더는 야근이 아니라 결과로 말한다 △비현실적인 목표만이 믿기지 않는 결과를 만든다 △지위가 아닌 지식이 권위를 만든다 △아이디어를 갈구하라 △리더는 평균이 아니라 탁월함을 요구해야 한다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위기의식 속에 살아라, 계산된 위험은 기꺼이 떠안는다 등이다.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국내 이식하기 위해 쿠팡만의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빠른 배송과 결합한 유통 혁신을 추진하면서 쿠팡은 각 영역의 1위 사인 이마트, CJ대한통운에서 단 한명의 경력자도 뽑지 않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이마트, CJ 등에서 상품 전문가를 뽑기 시작한 건 2021년 상장 이후부터다”고 말했다.
C 레벨 4명 중 3명이 외국 국적자
기존 대기업과 구별되는 쿠팡의 조직 문화를 쉽게 엿볼 수 있는 사례는 화상 회의다. 쿠팡은 2020년 펜데믹 이후 본격화된 비대면 회의를 여태껏 고수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조차 직원들을 회사로 불러들이고 있지만, 쿠팡은 대외 커뮤니케이션 부문 등 일부 조직을 제외하고 여전히 대다수 직원이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화상으로 이뤄지는 회의는 한국, 미국, 대만, 싱가포르 등을 연결하며 하루에만 수백건 진행된다. 일반 대기업과 다른 건 회의 소집을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준은 오로지 안건의 중요성과 긴급성이다. 쿠팡 전직 임원은 “다른 대기업의 과장급 직원이 회의를 소집하더라도 다른 부서의 임원들도 필요하면 화상 회의에 들어와야 한다”며 “이때 회의 참가자들은 각자가 어떤 직급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로지 회의 안건만을 두고 협의하고 논쟁한다”고 설명했다.
쿠팡 조직의 또 다른 특이점은 외국 국적의 임직원들이 소통의 어려움 없이 근무한다는 점이다. 4명의 C 레벨에서만 외국 국적자가 3명이다. 쿠팡은 한국 본사를 포함해 상하이 베이징 홍콩 미국 마운틴뷰와 시애틀 도쿄 싱가포르 등 전 세계 10개 도시에 오피스를 두고 다국적 인재들을 뽑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인도, 중국, 대만, 스위스, 베트남, 미얀마 등 국적도 다양하다. 오라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출신들도 수두룩하다. 외국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쿠팡에서 상시 근무하는 동시 통역자만 150~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 기업으로 최대 규모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