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올 4분기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오히려 2조원어치를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경기 침체에 대비해 신흥국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고, 갑작스런 공매도 금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불거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 4분기 초부터 이달 19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1조606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 투자를 늘린 것 같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큰 폭의 순매도로 반전된다. 외국인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순매수액은 같은 기간 각각 2조620억원, 1조2056억원에 달했다. 두 종목을 제외하면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6609억원어치 순매도다.
외국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순매수하는 건 '메모리 반도체 턴어라운드' 기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기가비트)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9월 1.3달러에서 11월 1.55달러로 올라서는 등 최근 반도체 업황의 회복 기미가 완연해졌다. 그러나 증권가 안팎에서는 내년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전문가는 "지난달 미국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9만9000건 증가해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는데 이는 지난달 17일 미국 3대 자동차 기업의 파업이 끝났기 때문"이라며 "단기적 호재가 잠깐 반영된 것이지 경제의 기초체력이 개선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3분기 미국 신용카드 연체율이 8.01%를 기록한 건 최근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버먼데이 실적을 뒷받침한 소비가 빚에서 나왔음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건 수석전략가를 인용해 "소비자의 80%가 펜데믹 기간에 저축했던 돈을 이미 대부분 소진했다"며 "앞으로는 소득 기준 상위 1%만이 펜데믹 이전보다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택담보대출 연체는 아직 없지만 주택 매매금액은 사상 최저 수준이고 상업용 부동산 부채는 6조5000억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6일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한 것도 외국인의 한국 증시 이탈에 영향을 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증권사 임원은 "금지 기간 외국인 자금이 한국 증시에서 추세적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