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룹 방탄소년단·세븐틴·뉴진스 등이 소속된 기획사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이 MBC를 찾아갔다. 4년간 하이브 아티스트들에게 암묵적 출연 금지령을 내렸던 MBC가 정식으로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가요계에서는 절대 '갑(甲)'으로 여겨지던 방송사의 화해 요청에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하이브 아티스트들은 2019년 마지막 날 방탄소년단이 미국 최대의 새해맞이 라이브 쇼 '딕 클락스 뉴 이어스 로킹 이브(Dick Clark's New Year's Rockin' Eve)' 출연으로 MBC '가요대제전'에 불참하게 된 뒤로 무려 4년간 MBC에서 볼 수 없었다.
방송사와 기획사 간의 힘겨루기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일이었기에 특별한 사례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 기획사가 방송 출연을 통한 홍보 효과 때문에 한발 물러서던 이전과 달리 하이브는 장기간 대립을 이어가며 끝내 MBC의 사과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하이브는 양사의 화해를 공식화한 것에서 나아가 불공정한 관행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며 ▲방송사의 지위를 이용한 프로그램·시상식 등의 출연 강요 ▲일방적인 제작 일정 변경 요구 ▲상호 협의 없는 출연 제한 조치 등을 근절하는 데 뜻을 모으기까지 했다.
업계에서는 방송사의 '갑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표적으로 음악방송의 오래된 악습이 거론된다. 기획사 실무진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불공정하다고 느껴지는 관행으로 ▲프로그램 종료 후 제작진에게 인사하기 위해 한참을 대기하고 ▲1위를 한 팀이 뒤풀이 회식 비용을 내고 ▲출연을 위해 들이는 비용 대비 출연료가 비현실적으로 낮다는 점 등이 언급됐다.
한 아이돌 매니지먼트 담당자는 "멤버 수, 회사 규모에 따라 헤어·메이크업 진행비가 다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최소 200~500만원 정도 든다. 인기 팀은 천만원 단위로 쓰는 곳도 있다. 반면 출연료는 10~30만원 수준이다. 무조건 마이너스가 나는 스케줄임에도 '홍보가 되지 않느냐'는 인식이 있어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고 전했다.
굳어져 버린 상하관계, 보복성 조치에 대한 우려 등으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공론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하이브의 결단이 의미 있는 변화의 첫발이 되길 바란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각종 온라인 콘텐츠를 통한 홍보 방안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음악방송은 필수 컴백 스케줄로 여겨진다. 사전 녹화 등 PD의 역량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 많고 아이돌 팀도 많아지다 보니 기획사끼리의 경쟁이 한껏 과열된 상태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아티스트들도 위축되는 경우가 있고, 특히 중소기획사 그룹은 사전녹화를 꿈꿀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짚었다.
그는 "업계 구조가 단번에 바뀌긴 어려울 거라 본다"면서도 "대형 기획사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한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번 사례가 불합리한 부분들을 공평하게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