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디스플레이업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예상 밖에 우려부터 접했다. 한참 일감이 몰리는 배터리 장비업계 관계자의 발언이기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외형상 요즘 국내 배터리 장비업계는 표정 관리하기 바쁘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셀 기업이 대규모 설비 증설에 나서면서 ‘낙수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어서다. 2025년까지 배터리 3사의 북미 지역 총투자액은 55조7000억원가량. 장비업계가 기대하는 수주 예상액은 22조원을 웃돈다.
하지만 현장에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중국 배터리 장비사의 ‘침투’가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했기 때문. 전극, 조립, 화성 등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만드는 중국 최대 배터리 장비 업체 선도지능장비는 한국에 지사를 세우고 국내 장비사와 직접 경쟁하고 있다. 또 다른 중국 장비사인 항커커지와 잉허커지, 리릭로봇도 한국에 지사를 세우거나 국내 기업과 합작사를 만들었다.
중국 장비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국내 배터리 3사를 고객사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 기업과 협력하면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유럽과 북미 시장 진출이 쉬워진다. 중국 업체가 국내 배터리업계 인사를 영입하거나 노하우를 습득하는 건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중국 업체의 침공에 대한 위기감은 정책 당국에서 느끼기 힘들다. ‘K배터리’ 신화에 심취해 물밑에서 퍼지는 중국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재 배터리 제조 장비 국산화율은 90% 내외다. 30% 안팎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을 크게 웃돈다. 탄탄해 보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 삼아 점유율 확보에 사활을 건다면 한순간에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큰 타격을 받은 사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는 허황된 것이 아니다.
배터리업계에선 “장비 생태계 강화를 위해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배터리산업 육성 정책은 셀 판매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중국이 작정하고 장비사를 키우면 한국 배터리산업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업체들의 조용한 ‘한국 침투’를 그저 바라만 봐서는 안 되는 엄중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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