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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부 부채 문제를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25년을 보냈습니다"(마크 비드먼 블랙록 수석 전무이사)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코로나19 팬데믹 등 위기 때마다 달러를 찍어내며 세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지만, 양적 긴축에 돌입하면서 그 청구서를 받아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간 증가한 정부 부채로 인해 미국 국채금리가 치솟으면서다.
美 재정적자, 2차대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미국 부채 규모가 늘어나지만 정치적 해결책은 나오지 않으면서 미국 경제가 한 세대 동안 보지 못한 방식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는 최근 몇주 간 미국 국채 금리가 급격히 상승한 이유"라고 덧붙였다.일반적으로 장기 국채 금리는 단기금리 기대치와 기간 프리미엄을 더한 값으로 계산된다. 가령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앞으로 10년간 미국 단기 금리 예상 경로와 그동안 국채를 갖고 있을 때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감안해 산출된다. 불확실성에는 늘어나는 정부 부채로 인한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 등이 포함된다.
두 요소 중 단기 금리가 상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WSJ은 평가했다. 현재 물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반영된 지난해보다 비교적 안정된 상태다. 지난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7% 상승하며 지난해 6월(9.1%)보다 상승 폭이 크게 둔화됐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내년 기준금리를 현재 5.25~5.5%보다 낮은 5.125%로 전망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두 차례 이상 다시 낮출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반면 기간 프리미엄이 상승했다는 신호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말 뉴욕연방준비은행의 10년 만기 프리미엄 지수는 2021년 6월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로 전환됐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제외하면 지난 7년 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기간 프리미엄 상승에는 팬데믹 기간 늘어난 정부 부채와 최근 미국 정치권의 불안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08년 1분기 64.27%에서 올해 2분기 119.47%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 재정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 의장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해임되면서 다음달 중순으로 미뤄진 연방정부 예산안 협의가 다시 난항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정부 부채 급등과 정치적 불안정성은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8월 미국 신용등급을 AAA 등급에서 AA+로 강등한 이유 중 하나다.
이탈리아 영국선 이미 '재정효과' 나타나
이제서야 미국 정부 부채가 국채 금리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널리스트들은 "경제 위기로 인한 양적 완화 시기 가려졌던 부채 문제가 양적 긴축 시기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19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시장은 경기 침체 가능성에 더 주목했다. 각국 중앙은행들도 경기 침체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이고 국채를 매입(양적 완화)했다. 이처럼 채권 수요가 늘고 가격이 오를 때는 장기채권 금리가 하락해 기간 프리미엄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다. 반면 지난해부터 유동성 증가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맞물려 물가가 상승하자 각국이 다시 긴축 정책을 펴면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 등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면서 올해 재정 적자가 늘어난 여파도 작용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는 2023 회계연도 마감을 한 달 앞둔 지난달 30일 1조500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5540억달러(58%) 증가한 수치다. 올해 미국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6%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차 세계대전 이래 2008년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치다.
유럽에서는 이미 재정 정책이 기간 프리미엄 인상으로 직결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 27일 올해 재정적자 규모를 GDP 대비 4.5%에서 5.3%로 상향하자 다음 날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4.786%에서 연 4.882%로 뛰었다. 이탈리아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시장의 불안을 자극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영국이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한 이후 10년물 영국 국채금리는 2011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