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이 5년 이내 하락한 경우는 60%가 채 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인플레이션 해결 시점을 두고 때 이른 축포는 오히려 물가상승률을 다시 가속했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월가의 인플레이션 둔화 기대와 달리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미 국채금리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플레 111건 중 64건만 5년 내 해결
3일 국제통화기금(IMF)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닐 아리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연구진은 ‘100번의 인플레이션 충격과 정형화된 사실 7가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7가지 특징을 분석했다.우선 1970년부터 지금까지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111건을 분석한 결과 64건(57.6%)만 5년 안에 문제가 해결됐다. 이마저도 인플레이션 해결까지 3년 이상 걸렸다.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1년 이내 위기 이전으로 경제가 회복된 사례는 10%(12건)에 불과했다. 이 중 7건은 1998년 한국과 같이 금융위기 상황이었다.
인플레이션 관련 통화정책의 실패는 주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과 관련이 있었다. 보고서는 “해결하지 못한 인플레이션 사례의 약 90%가 인플레이션의 초기 충격 이후 첫 3년 이내에 물가상승률이 크게 하락했지만 이후 높은 수준에서 정체되거나 다시 가속됐다”고 설명했다.
1973년 미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1970년대 초반 1차 오일쇼크로 물가가 급등하자 기준금리를 최대 연 11% 선까지 올렸지만 이후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곧바로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1979년 기준 물가상승률이 13%대까지 올랐다.
일관적인 통화정책이 중요
보고서는 중앙은행의 일관된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한 국가의 공통점은 시간이 지나도 지속해서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쳤다는 점을 짚었다. 긴축적인 통화정책에 따른 명목환율과 명목 임금 상승률을 적절히 통제한 것도 인플레이션을 해결한 국가들이 보인 모습이었다. 5년 이내 단기간에 심각하지 않은 저성장을 경험했다는 특징도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1979년 영국과 1980년 이탈리아를 꼽았다. 영국은 당시 2차 오일 쇼크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5%에서 15%로 급등했다. 이에 따라 영국 중앙은행은 1980년과 1984년 사이에 실질 금리를 연 -5%에서 연 7%로 상승시켰다. 1979년 마거릿 대처 총리의 당선과 동시에 인플레이션 통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 기간에 오일 쇼크가 경제를 강타하면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처음에 급락했지만, 이후 1980년대 중반에는 충격 이전의 성장률인 3~5%로 회복됐다. 이탈리아도 비슷한 기간 실질금리가 연 -5%에서 연 6%로 상승했다. 보고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강화도 2차 오일쇼크 이후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데 한몫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긴축 완화 기대에 찬물
한때 시장에선 Fed가 7월 기준금리를 연 0.25%포인트 올렸을 때 사실상 마지막 인상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감마저 커졌다.하지만 최근 제롬 파월 Fed 의장과 연준 인사들이 추가 긴축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이어지면서 이같은 시장의 희망 섞인 전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Fed는 IMF의 보고서에서도 나왔듯 섣부른 긴축 완화로 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과거 사례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CPI 상승률이 3.7%로 나온 가운데, Fed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기준금리를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유지하겠다는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 국채금리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2일(현지시간) 뉴욕 채권 시장에서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연 4.7%를 돌파하기도했다.2007년 10월 이후 최고치다.
IMF는 “인플레이션 완화 징후가 보인다고 해서 긴축 강도를 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