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간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3일(현지시간) 발표한 글로벌 부채 통계에서 작년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모든 수단 기준) 비중은 281.7%로 통계 확인이 가능한 26개국 중 2위였다. 전년 대비 부채 증가폭은 6.6%포인트로 최고를 기록했다. 같은 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계에서는 최근 몇 달간 가계빚이 확연히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은은 어제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를 내놨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이후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면 성장 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그 수준을 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말과 보고서만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민간부채를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부채가 늘어난 것은 팬데믹 시기에 시행한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로 한계 기업과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지연된 탓이 크다. 옥석을 가리는 과정을 생략하는 바람에 금융권의 부채 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등을 중심으로 불어나는 가계부채 증가 역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통화 긴축이 덜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은이 말로만 금리 인상 가능성을 흘리면서 실제로는 계속 금리를 동결하고 있으니 시장에 “금리 인상은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한은이 금리를 섣불리 올릴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는 것도 안다. 가뜩이나 부진한 소비를 옥죄고 취약계층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실질적 조치 없이 걱정과 우려만으로 부채를 감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월보다 올라 미국 중앙은행(Fed)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유가도 들썩이고 있다. 강달러와 원·달러 환율 상승,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는 현재 연 3.5%인 국내 기준금리의 적정성을 위협한다. 한은은 경우에 따라 금리 인상을 결행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보내고, 실제로 단행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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