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야심차게 내놓은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재검사 결과가 산으로 가는 모양새다. 금감원이 뚜렷한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펀드 관련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쟁점이 정치 공작 논란으로 옮겨가서다. 특혜 수혜자로 지목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복현 금감원장 사이에선 사과를 했는지 여부를 두고 '진실게임'까지 벌어지는 분위기다.
"특혜다" vs "아니다"
25일 금융감독원은 "개방형 라임펀드 중 유독 네 개 펀드에서만 불법적인 방식으로 자금을 끌어다 투자자에게 환매가 이뤄졌다"며 "투자자의 손실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금감원은 이를 특혜성 환매로 판단한다"는 입장 자료를 발표했다. 이는 같은날 김상희 더민주 의원이 특혜 환매 의혹을 강경 부인하며 금감원에 대해 정정 발표와 사과를 요구한 일에 대한 대응이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근거 없는 허위 사실로 특혜를 받았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국민들에게 정정 발표를 할 것을 단호하게 요구한다"며 "이를 시행하지 않으면 사법조치를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전날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 3개 운용사 추가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 중엔 라임펀드가 환매를 공식 중단하기 전에 다선 국회의원, 투자기관, 기업 등 일부 유력 투자자에게 미리 돈을 돌려줬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금감원은 '특혜성 환매'를 받은 이들이 다선 국회의원 A씨(2억원), B상장사(50억원), C중앙회(200억원) 등이라고 공개했다. 이들이 투자한 펀드 네 개를 환매하기 위해 라임이 타 펀드 자금 125억원, 회삿돈 4억5000만원을 끌어 썼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2억원을 투자했는데 펀드 가격이 떨어지길래 2019년 6월에 800만원을 환매했고, 같은해 9월엔 거래 증권사로부터 (펀드) 전망이 좋지 않으니 환매하는 것이 낫겠다는 조언을 들어 환매를 신청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나를 비롯해 해당 펀드 투자자 16명 전원이 같은 조언을 듣고 환매를 받았다"며 "나는 약 4000만원을 손해봤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당시 네 개 펀드는 부실한 자산이나 비시장성 자산을 편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시 대량 환매신청에 대해 정상적인 환매를 할 수 없었고, 다른 자금을 지원받지 않고는 환매 연기가 불가피했다"며 "이들 펀드에 대해 불법적 자금지원으로 손실을 회피한 것은 특혜를 준 것"이라고 맞섰다.
금감원은 이날 김 의원이 라임펀드의 환매 전격 중단 가능성에 대해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같은 시점에 환매 신청이 들어왔는데 환매를 해주지 않은 상품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다섯 차례 사과, 녹음도 했다" vs "사과도 유감 표명도 없었다"
이날 김상희 의원과 금감원은 이복현 금감원장이 김 의원에게 사과를 했는지 여부를 두고도 평행선을 달렸다.김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결정적으로 금감원장이 우리방(의원실)에 와서 다섯번도 넘게 송구스럽다며 사과했다"며 "이 원장과 한 시간가량 면담을 하면서 (내가) 펄펄 뛰면서 혼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장이 먼저 (정정발표를 위한) 문안을 작성해달라고 요청해와 해당 문안을 전달했다고도 했다. 이 대화를 모두 녹음해둔 만큼 향후 녹음본을 공개할 수도 있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 원장의 사과 등이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이날 "이 원장은 백혜련 정무위원장과 김상희 의원의 요청으로 김상희 의원실을 방문해 입장을 청취했을 뿐,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한 사실은 없다"고 발표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이 원장이 김 의원의 이야기를 듣던 중 '예, 예' 정도로 반응한 것을 두고 과도한 해석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총선 겨냥한 정치 공작" vs "라임 횡령금, 정치자금 가능성"
김 의원은 이날 금감원의 이번 검사 결과 발표를 정치 공세로 규정했다. 그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내년 총선을 노리고 라임 사태 피해자들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금감원이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지 않고 '민주당 국회의원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같은날 금감원은 라임펀드 등이 투자한 회사에서 횡령으로 빠져나간 돈이 불법 로비 자금이나 정치 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공식 제기했다. 전날 라임 피투자사의 횡령 사례만 밝혔을 뿐, 최종 사용처는 금감원 차원에선 알 수 없다며 극구 말을 아낀 것과는 대조적이다.
금감원은 "(펀드) 피투자사의 자금유용 의혹과 관련해서는 자금흐름을 비롯해 불법 로비자금이나 정치권 유입 등 사용처가 명확히 규명될 수 있도록 수사 과정에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사용처 가능성을 불법 로비·정치 자금으로 지목한 근거에 대해선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이후 일에 대해선 검찰로 공을 넘기는 모양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사법 수사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정황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며 "남은 의혹에 대해선 검찰 조사를 거쳐 밝히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