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전용기 추락으로 숨진 러시아 용병단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그간 '거리두기'를 해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을 요구한 미국 및 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6월 바그너 그룹 반란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고위 참모에게 미국과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고 보도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지낸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 담당 보좌관과 통화에서 이같이 전했고, 이는 미국이 무장 반란과 거리를 두고 러시아와의 사이에 추가적인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앞서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바그너 그룹 반란 사태가 마무리된 직후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이 반란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전한 바 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러시아 측과 접촉해 프리고진의 반란이 미국의 의도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반란 사태 이후 프리고진에게 "(독살을 피하기 위해)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등 러시아 내부 문제는 러시아가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프리고진은 요식업 경영자 출신으로 식당을 운영하며 젊은 시절 푸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크렘린궁 각종 행사를 도맡으며 '푸틴의 요리사'가 됐고, 2014년 바그너 그룹 창설 후 아프리카와 중동 등 세계 각지 분쟁에 러시아 정부를 대신해 개입하며 세력을 키우고 이권을 챙겼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갈등이 불거졌다. 우크라이나 점령 과정에서 러시아 군부와 갈등이 커졌고, 결국 지난 6월 23일 러시아 군 수뇌부 처벌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바그너 그룹은 반란 직후 러시아 서남부 로스토프주 군시설을 장악한 이후 곧바로 모스크바를 향해 북진했고 하루도 안 돼 모스크바에서 200㎞ 내 거리까지 진입했다. 그렇지만 돌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협상을 통해 반란을 중단하기로 했고,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가는 대신 그와 바그너 그룹 용병들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푸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프리고진의 신변에 대한 우려가 흘러나왔지만, 프리고진이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오가는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프리고진이 반란 사태 이후 2개월 만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면서 신변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날 러시아 재난 당국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엠브라에르 레가시 제트기가 트베리 지역의 쿠젠키노 주변에 추락했다"며 "초기 조사 결과 승무원 3명을 포함해 탑승한 10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사망자 명단에는 프리고진의 최측근으로 그와 함께 바그너 그룹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드미트리 우트킨도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AP 통신은 항적 추적 데이터를 근거로 바그너 그룹 소유로 등록된 비행기가 이날 저녁 모스크바에서 이륙한 지 몇 분 후에 비행 신호가 끊어졌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현지 매체를 인용해 프리고진과 우트킨 등 일행이 사고에 앞서 모스크바에서 국방부와 회의를 가졌다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