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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용의 EU확대경] 순환경제 시대, 폐기물도 원자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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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를 유해 폐기물로 지정하라.”

환경단체가 주장할 법한 요구가 배터리업계에서 나왔다면 다소 의아할 것이다. 유럽연합(EU)이 개정 작업 중인 폐기물 운송 관련 법규에 따르면 유해 폐기물은 비(非)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의 반출이 금지되는 등 엄격하게 관리된다. EU 리튬충전식배터리협회가 폐배터리에서 나오는 블랙매스와 활성물질 등을 유해폐기물로 분류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국 배터리 폐기물의 수출을 제한해 역내에서 재활용하기 위해서다. 전기차 보급이 이제 막 본격화해 폐배터리가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제도를 만들기 위한 물밑작업은 벌써부터 치열하다.

지난 6월 채택된 EU 배터리법은 재활용 원자재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8년 후부터는 배터리를 만들 때 코발트, 납, 리튬, 니켈 등은 재활용 원자재를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 원자재 공급망 구축과 순환경제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아야 하는 EU에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유럽 내에서 신규 광산을 개발하자니 환경오염이 걱정되고 수입하자니 중국 등에 대한 의존도가 우려되기 때문에 배터리 폐기물은 그 자체로 가성비 좋은 대안 자원이 될 수 있다. 관련 규제로 배터리 제조사에는 재활용 원자재를 확보해야 하는 추가 부담이 생겼지만, 재활용업계에는 새로운 기회 시장이 형성됐다. 이미 국내 기업들도 잰걸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배터리 3사가 생산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동구지역에 지난해 연산 7000t 규모의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이 준공됐고 독일에서도 리사이클링 파크 설립을 위해 부지 선정과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폐기물에 대한 규제는 배터리뿐 아니라 포장재나 섬유제품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EU 내에서는 1인당 180㎏의 포장재 폐기물과 11㎏의 섬유 폐기물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2030년까지 역내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의무화하고, 포장재 재사용 목표를 부과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섬유 분야에서도 미판매 의류의 폐기를 제한하고 폐섬유의 수집과 재활용에 대한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관련 업계가 시기상조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어 시행 일정이 입법 과정에서 다소 조정될 수 있으나 방향성만큼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일례로 핀란드의 스타트업 인피니티드 파이버는 의류 폐기물로 재생섬유를 만들어 유럽의 유명 의류 브랜드와 1억유로 이상의 장기 계약을 맺기도 했다.

EU는 순환경제정책을 통해 제품 설계 및 생산단계부터 수거·재활용·폐기까지 생산자의 책임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만들 때부터 유통과 회수·폐기까지 고려해야 하고 폐기물은 다시 원자재가 돼 생산에 투입된다. 재활용 원자재의 사용 비중이 의무화되면 폐기물 확보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이다. 이제 폐기물은 관리해야 하는 쓰레기가 아니라 활용해야 하는 원자재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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