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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출구전략에 시동을 건 이후 일본의 장기금리가 10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는데도 엔화 가치는 떨어지는 이례적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돌발 변수가 겹치면서 엔저(低)를 저지하려는 일본은행의 전략이 꼬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4일 일본 채권시장에서 장기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때 연 0.655%까지 상승했다. 2014년 1월 이후 9년7개월 만의 최고치다. 지난달 27일 연 0.44%였던 금리가 1주일 새 0.2%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지난 7월 28일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금리를 연 -0.1%, 장기금리는 연 0%±0.5%로 유지하면서도 “장·단기금리조작(YCC) 정책을 보다 유연하게 운영한다”고 결정했다. 이를 위해 가격 지정 공개시장운영의 실시 기준을 0.5%에서 1.0%로 상향 조정했다. 사실상 장기금리를 연 0.5%에서 연 1.0%로 상향 조정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금리가 단숨에 연 0.5%를 넘어섰다.
일본은행은 장·단기금리조작을 유연화한 목적 가운데 하나로 환율 방어를 꼽았다. 일본의 금리가 오르면 미국과 금리차가 줄어들어 엔화 가치가 반등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금융정책결정회의 직전인 지난달 27일 달러당 138.78엔이던 엔·달러 환율은 이후 지속적으로 올라(엔화 가치 하락) 지난 2일엔 143.32엔을 기록했다. 그 이후 엔·달러 환율은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140엔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금리가 오르는데도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를 금리 상승 속도에서 찾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 상승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 환율이 금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0.62%를 넘은 지난 3일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에 나서 금리가 추가로 오르는 것을 막았다. 일시적으로 10년물 금리가 0.065%포인트 급등한 지난달 31일 국채를 3000억엔어치 매입한 데 이어 두 번째 공개시장조작이었다. 국채 금리가 단기 급등하는 걸 막기 위해 국채 매입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엔화가 시중에 대거 풀리면서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의 엔·달러 환율 상승은 달러 강세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일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이후 미국 장기금리는 연 4.2%로 9개월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고, 이는 달러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요국 통화 가치를 지수화한 닛케이통화지수에 따르면 7월 27일 이후 달러 가치는 1.5% 상승했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치가 가장 많이 오른 통화였다. 반면 엔화 가치는 0.8% 하락해 G7 꼴찌였다. 다카시마 오사무 씨티그룹증권 수석외환전략가는 “엔화 가치가 작년 9월 일본은행이 시장개입에 나섰을 때의 기준선인 145엔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