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선택지 점차 좁아져
글로벌 컨설팅기업 스트래티지(strategy)가 집계한 각사의 연도별 전기차 출시 계획에 따르면 올해 연말까지 출시되는 주요 전기 신차는 모두 14종에 달한다. 이미 판매 중인 기아 EV9을 비롯해 테슬라 사이버트럭, 아우디 Q6 e-tron, 토요타 bZ1X, 폭스바겐 ID.7, BYD 시걸(Seagull), 피아트 600, 폴스타 4, 홍치 eHS5, 울링 빙고(Bingo) 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올해보다 내년 이후에 쏟아질 전기 신차다. 스트래티지가 주요 차종으로 꼽은 것만 38종에 달한다. 먼저 2024년 등장할 신차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 닷지 차저 데이토나, 폭스트론 모델C, 현대차 아이오닉 4, 짚 리콘(Recon), 기아 EV4, 루시드 그래비티, 마루티-스즈키 eVX, 메르세데스 벤츠 EQG, 미니 에이스맨(Aceman), 르노 5 등이다.
제조사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2025년에는 크라이슬러 에어플로우(Airflow), 현대차 아이오닉 8, 기아 EV3, 마힌드라 BE.05, 닛산 맥시마 EV, 폭스바겐 ID.1 등이며 2026년에는 BMW iX5, 현대차 아이오닉 3, 쉐보레 서버밴 EV, 레인지로버 이보크, 토요타 bZ5X, 폭스바겐 ID.2 및 ID.3X 등이 출격을 마친다. 그리고 예상의 마지막 시점인 2027년은 롤스로이스 컬리넌, BMW i1, 포드 매버릭 EV 등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리스트에는 중국의 전기 신차가 상당수 빠져 있는데 중국의 경우 너무나 많은 신차가 즐비해 목록에 올리는 것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게다가 일부 제조사는 전기차 라인업을 추가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바 있어 새로 쏟아질 전기 신차는 예상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결국 올해를 기점으로 앞으로 등장할 신차 중의 상당수는 배터리 전기차로 전환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내연기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앞으로 생산할 동력계는 100% 내연기관이 아니라 HEV의 비중이 높아진다. 스트래티지 전망치에 따르면 2028년 글로벌 시장에 등장하는 신차의 50%는 BEV가 차지하고 40% 이상은 HEV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HEV가 내연기관의 대표주자로 BEV에 맞서는 형국이 전개된다.
눈여겨 볼 부분은 쏟아지는 BEV의 1회 충전 주행거리다. 지금은 대부분 장거리 경쟁을 펼치지만 충전 인프라 확충이 본격 전개되면 주행거리보다 단위효율로 시선이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제조사 또한 BEV의 무한 가격 경쟁이 불가피해 소비자들의 관심사를 최대한 주행거리에서 단위효율로 바꾸려 한다. 특히 작은 차를 만드는 제조사는 배터리 공간이 작아 장거리 확보가 쉽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h/㎞'를 앞세워 프리미엄 브랜드를 유지하려 한다.
제조사마다 전기차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환경 규제다. 지속적으로 배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수송 부문의 화석연료 사용 비중을 줄이겠다는 세계적 흐름이 제조사의 제품 개발 방향을 바꾸는 중이다. 물론 저항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많은 완성차기업이 어차피 시간과 선택의 문제일 뿐 전동화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했고 본격적인 전환 속도전에 뛰어든다.
그러자 전기차 산업을 키우려는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하다. 그리고 이때 BEV 구매 활성화를 위해 꺼내든 카드가 보조금이다. 하지만 보조금 속에는 전기차 산업 보호 논리가 담겨 있어 논란이다. 당초 보조금은 운행 중 배출가스가 없다는 환경 명분으로 만들었지만 점차 각 나라의 산업 보호 목적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로 돌아서는 중이다. 그런데 보조금은 무한 지급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일부 국가는 차라리 BEV에 대한 보조금을 없애고 기업 간 치열한 가격 경쟁을 유도한다. 대신 소비자 관점에선 전용도로 사용, 주차료 할인, 도심 진입 허용 등 이용 측면에서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보조금으로 해당 국가의 BEV 산업을 키우는 것보다 각 기업이 자생력을 갖도록 만들어주는 게 미래적 관점에서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당 지급하는 보조금은 해마다 줄이는 대신 지급 대상 차종과 수량은 확대하는 중이다. 그 결과 내년 지급될 전기차 보조금 총액은 올해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논란은 오히려 커지는 모양새다. 특히 앞으로 쏟아질 전기 신차를 감안할 때 이제는 보조금 대신 이용자 혜택을 강화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들려온다. 판매되는 자동차의 절반 가량이 전기차로 바뀐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전기차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기차'가 특별히 새로운 이동 수단이 아닌 시대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