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엔저(低)의 여파로 일본인들이 해외여행을 주저하고, 해외로 떠나더라도 한국과 대만 등 가까운 나라들을 주로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절대적인 인기에 힘입어 서울이 코로나19 확산 이전까지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였던 하와이 호놀룰루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일본 최대 여행사 JTB는 올해 여름휴가 기간(7월15~8월31일) 해외여행을 떠나는 일본인 관광객수를 120만명으로 6일 추산했다. 1년 전보다 두 배 늘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에 비해서는 39.6%에 불과했다. 자국내 여행을 계획하는 일본인이 7250만명으로 2019년 수준을 웃돌 것으로 나타난 결과와 대조적이다.
또다른 여행사 HIS의 여행예약동향조사에 따르면 올 여름 일본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는 서울이었다. 2019년 1위였던 호놀룰루를 2위로 밀어냈다. 서울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의 30%가 20대였다. 대만 타이페이, 싱가포르, 태국 방콕이 3~5위로 근거리 여행지가 인기를 끌었다.
인기 해외여행지가 단거리화하는 반면 자국내 여행지는 홋카이도, 오키나와 같은 원거리 여행지가 인기였다.
일본인들이 해외여행을 주저하는 것은 엔화 가치가 2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경비 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인들의 구매력이 크게 떨어진 점도 한몫한다는 설명이다. 해외 물가가 지난 30년간 2~3배 오르는 동안 일본의 물가는 제자리걸음한 탓이다.
일본 경제분석회사 도탄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말 중저가 일식 체인 '오토야' 뉴욕지점의 임연수어정식 가격은 엔화 환산 기준 6000엔(약 5만4430원)으로 일본의 6배였다. 2018년 2월 뉴욕과 일본의 가격차는 3.3배였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해외여행 평균 경비가 1인당 평균 17만8000엔으로 1년 전의 86.3%에 그친 반면 자국내 여행 경비는 4만엔으로 1996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격히 늘면서 숙박비가 크게 올라간 영향으로 분석된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5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89만8000명이었다. 코로나19 이전의 70% 수준까지 회복됐다.
일본 최대 고급 호텔 체인인 프린스호텔의 예약건수는 2018년의 1.3배, 최고급 숙박시설 체인인 호시노리조트의 8월 가동률은 2019년의 80~90%까지 회복됐다.
호주 출장 관리회사 FCM라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도쿄도 평균 객실단가는 294달러(약 39만원)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다. 360달러에 달하는 뉴욕에는 못 미치지만 로스엔젤레스(295달러)와 같은 수준이다. 런던(271달러) 파리(263달러)보다 도쿄의 숙박비가 더 비쌌다.
인력난도 일본 여행경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관광객수는 급속히 느는데 관광업 종사자수는 회복되지 않아서다. 세계여행투어리즘협의회(WTTC)는 2023년 일본의 관광 부문 고용규모를 560만명으로 추산했다. 2019년보다 30만명 적다.
일본정책금융공사의 작년 4분기 조사에서 숙박·외식업체의 56%가 인력난으로 "매출을 늘릴 기회를 잃고 있다"고 답했다. 항공업계의 인력난도 심각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규슈 오이타 공항이 항공기 유도를 담당하는 '그랜드핸들링' 인력 부족으로 제주항공 직항편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