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유럽중앙은행(ECB) 포럼에 참석한 선진국 중앙은행 총재 간에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됐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의 밀월 관계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애써 등을 돌렸다. ECB 포럼에 초대되지 않은 이강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파월 의장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주요 중앙은행 총재 간 입장차는 2년 전부터 미국이 역환율전쟁의 잣대로 활용해온 ‘달러인덱스의 함정’에 그 원인이 있다. 역환율전쟁이란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기 위해 통화 평가절상을 도모하는 환율전쟁을 말한다.
달러인덱스의 함정을 풀어보기 위해서는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71년 리처드 닉슨의 금태환(1온스=35달러) 정지 선언 이후 Fed는 통화정책의 참고 지표로 달러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없어졌다. 고심 끝에 당시 세계 경제 중심지이던 유럽 통화를 중심으로 달러인덱스를 산출해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다. 달러인덱스 구성 통화는 유로 57.6%, 엔 13.6%, 파운드 11.9%, 캐나다달러 9.1%, 덴마크크로네 4.2%, 스위스프랑 3.6%로 유럽 통화 비중이 77.3%에 달한다. 유럽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 달러인덱스는 떨어지고 약세를 보이면 올라가는 결정적인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1973년 만들어진 달러인덱스는 반세기가 지났지만 구성 통화와 구성 통화 간 비중이 변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중국을 필두로 아시아 국가는 부상한 데 비해 유럽 국가는 통화위기, 재정위기, 브렉시트 등을 거치며 쇠퇴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역환율전쟁은 인플레이션 통제 여부에 따라 두 단계로 구분된다. 작년 10월 이후 Fed는 인플레이션이 통제권에 들어오면서 피벗의 필요성이 제기된 데 비해 ECB는 뒤늦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려왔다. 이 과정에서 달러인덱스가 크게 떨어져 미국은 강달러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수출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
마지막 관문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수입물가를 어떻게 잡느냐는 또 다른 숙제다. 이때부터 미국의 달러 정책은 유럽 통화에 대해서는 ‘약세’, 아시아 통화에는 ‘강세’를 유도하는 이원적 전략을 추진했다. 특히 중국 위안화에 초점을 맞춰 달러 강세를 유도해 왔다. 지난 2월 이후 달러인덱스와 아시아 통화 환율 움직임을 보면 미국의 이원적 달러 정책이 명확히 드러난다. 달러인덱스는 102선을 중심으로 유지해 작년 10월 이후 달러 약세 추세가 지속되고 있으나 위안화 가치는 6.8위안에서 7.2위안으로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엔화 가치는 달러당 125엔에서 145엔으로, 원화 가치도 1228원에서 1320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중앙은행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국 통화 약세를 방치할 경우 다 잡아가던 인플레이션이 재발하는 ‘볼커의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1차 역환율전쟁 기간에 금리 인상을 통한 자국 통화 방어효과가 작은 비기축통화국의 한계를 느낀 아시아 국가들이 이번에는 외환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 절하를 방지하기 위해 연일 보유 달러를 풀고 있다. 일본은행도 엔·달러 환율이 145엔에 다가서자 구두 개입하기에 바쁘다.
미국도 편치만은 않다.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아시아 국가의 자국 통화 방어 노력이 성공하면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미·중 경제패권 다툼 연장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2차 역환율전쟁이 지난 2년간 지속돼온 1차 때보다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중의 틈새에 낀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이미 달러 약세 속에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원화의 변동성이 한때 베트남 동화의 다섯 배에 달할 정도로 2차 역환율전쟁의 피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당장 선택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100억달러’ 규모보다 ‘달러 베이스’로 체결된 한·일 통화스와프의 의미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