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통일에 대비해 120만t의 쌀을 정부가 강제 비축하게끔 하는 법 제정을 추진한다. 가격이 저렴한 수입쌀을 정부 비축분으로 돌려 국내 시장을 보호하고, 주요 곡물의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내용도 담았다. 일반법보다 우선하는 특별법을 통해 제2, 제3의 양곡관리법을 양산하려는 시도란 분석이 나온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정읍·고창)은 29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식량안보특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국은 식량자급률은 44%, 곡물자급률은 21%에 불과해 식량안보가 취약한 국가 중 하나"라며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공급하기 위한 정책에 대한근거를 마련해 식량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법안 발의의 취지다.
이 법에는 정부가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 공급하기 위해 5년 단위 중장기 계획인 '식량안보 강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정책 등을 논의할 범부처 기구인 식량안보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두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통상 특정 분야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화할 때 주로 포함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보장하거나 과잉 공급되는 쌀을 정부가 추가로 매수해 비축하게 하는 등 그간 진보농민단체들이 요구해온 내용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 법안 10조엔 정부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따른 '예시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예시가격은 농수산물의 수급조절과 가격안정을 통해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한 하한가격을 뜻한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주요 농산물 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국가나 지자체가 차액을 생산자에 보조하는 '최저가격보장제'를 염두에 둔 조치다.
정부가 미곡, 맥류(보리)등 주요 곡물의 증산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예산에 그 계획의 이행에 필요한 사업비가 우선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갔다. 이는 연평균 20만t이 초과 생산 있는 쌀 생산을 최대한 억제한다는 정부의 기조와는 달리 '증산'을 사실상 강제하는 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규정이다.
현재 한해 수요의 2개월치인 양곡 공공비축 규모를 6개월치로 늘리고(12조), 남북한 통일시 식량부족에 대비해 120만t의 쌀을 상시 비축, 유지하게하는(13조) 내용도 들어갔다. 구체적으로 2년을 단위로 매년 60만t씩을 정부가 비축하고, 여기엔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따라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저율관세 의무수입물량(TRQ) 40만9000t을 포함시키도록 했다.
정부가 공공비축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2개월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하는 한해 수요량의 17~18%에 맞춰진 수치다. 정부는 이 기준에 맞춰 연간 약 35만~40만t을 비축해 2년 단위로 70만~80만t의 쌀을 비축한다. 이 양을 대폭 늘려 전반적인 정부 수매 규모를 늘리면서 수입쌀을 전량 비축에 투입해 국내 쌀 시장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법안에 내재된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 내에선 이 법안이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최종 부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우회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 의원은 이 법을 일반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특별법으로 발의했다. 입법이 이뤄질 경우 같은 사안에서 양곡관리법이나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농지법 등 농림축산식품부 소관법들보다 이 법이 우선 적용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법 통과 시 재정 소요가 얼마나 될지 등을 검토 중"이라며 "특별법의 경우 동일 사안에서 다른 법보다 우선 적용되기 때문에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