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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미 국무장관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방중 첫날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과 만난 그는 ‘지속적 소통’을 강조했다. 친 장관은 ‘미국의 대중국 압박 중단’을 선행 조건으로 내걸었다. 현재의 미·중 갈등 상황을 반복한 수준의 대화였지만, 블링컨의 방중은 그 자체로 양국 관계의 안정 국면 전환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시진핑 방미 논의하나
블링컨 장관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2021년 1월) 이후 미국 외교수장으로서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6월 마이크 폼페이오 이후 미국 현직 국무장관으로는 5년 만이다. 폼페이오 당시 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했다.블링컨 장관은 당초 지난 2월 방중을 계획했다가 중국 정찰풍선 사태로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번에 이틀 일정으로 방중한 블링컨 장관은 19일에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외사판공실 주임)과 만날 예정이다. 이어 시 주석과 면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5시간 30분동안 이어진 회담에서 양측은 두 나라의 갈등이 무력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가드레일’(안전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블링컨 장관은 개방적이고 권한이 부여된 소통 채널을 구축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이를 통해 오해를 해소하고 오판을 피하면서 도전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등 양국이 책임 있게 관계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측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이른바 ‘억제와 탄압’을 중단해야 협력이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친 장관은 “미국은 내정간섭과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두 외교장관은 가장 큰 현안인 대만 문제와 관련해 상호 ‘레드라인’과 ‘마지노선’을 논의했다. 미국이 핵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 대신 중국발 위험을 줄인다는 의미의 ‘디리스킹’을 내세운 것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 중국은 그동안 디리스킹을 “간판만 바꾼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블링컨 장관이 직접 디리스킹의 진의를 설명하면서 상호 이해가 높아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시 주석의 방미와 양국 정상회담도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시 주석이 오는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미국에 갈 것으로 예상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인 17일(현지시간) 시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정찰풍선 관련 구체적 내용을 몰랐을 수도 있다면서 “몇 달 내에 시 주석과 이야기하길 희망한다”고 발언했다.
한·중 외교 운신 폭도 확대 관측
이번 블링컨의 방중으로 미·중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미·중 경쟁에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고, 오판에 의한 무력 충돌 가능성을 예방하는 측면에서 이번 회담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블링컨 방중 이후 미·중 관계의 향배는 한·중 관계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설화 때문에 한·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번 고위급 협의를 통해 미·중 충돌 우려가 작아지면 중장기적으로 한·중 외교의 운신 폭도 그만큼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
블링컨 장관은 17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통화하고 “상호 존중에 기반해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한국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 방문의 상세한 결과를 신속하게 한국 측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