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교육개혁 추진 방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다. 공교육 교과과정에 없는 수능 문제 때문에 사교육비 부담이 커진다고 지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선 ‘물수능’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대통령 발언은 입시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하라는 것이 아니다. 핵심 메시지는 품질 낮은 공교육의 정상화 촉구다.
물론 “교육당국과 사교육산업이 한편(카르텔)인가”란 발언은 다소 무리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사교육비와 학원 의존도가 그만큼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사교육비는 26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사교육비 탓에 한국에서 자녀를 18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양육비용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8배로 세계 최고 수준이란 분석도 있다. 독일(3.64배), 프랑스(2.24배) 등 다른 선진국의 2~3배에 이른다.
민간 교육시장의 성장은 공교육 퇴행과 맞물려 있다. 넘쳐나는 교부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공교육 품질이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길래 학교 교육이 이 지경인가. 하지만 사교육 문제가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만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적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공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지 않다. 교육의 수요자는 학생이다. 하지만 학교와 교사들은 자동으로 배정되는 학생들을 수요자로 여기지 않는다.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욕구를 수용하지 못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공급 시스템을 통제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민간 교육시장에는 경쟁이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좋은 선생을 영입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교재를 개발한다. 오늘날 이토록 학원가가 번창하고 ‘1타강사’ 같은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는 시장이 학교보다 더 질 좋은 교육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사교육비 근절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사교육=망국병’이라는 도식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자발적 시장을 옥죄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오히려 시장이 제공하고 있는 교육 내용과 그들의 방식을 공교육에 접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접근법일 수 있다. 차제에 정부의 입시·교육 독점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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