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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도 없는 아담한 카페…남매 사장님이 축 처진 어깨를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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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곳이 청무우 밭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달빛에 반짝이는 것은 무밭이 아니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였다. 어깨를 부딪치며 서로의 갈 곳만 바라보는 고단한 출근길에, 친절하지 않은 수많은 이들과 마주하며 해결해야 하는 숙제 같은 업무에 날개는 금방 물결에 절어버린다. 젖어버린 날개를 단 퇴근길에는 소셜네트워크의 어떤 공감과 위로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높이 솟아오른 빌딩과 아파트 사이를 지나 집에 도착하지만, 밖과 구분된 공간은 물리적 경계에 그치지 않아 마음까지 기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과 일터를 오가는 길목 어딘가의 카페를 찾아가는 일은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카페는 일터도, 주거 공간도 아닌 중립적인 공간이다. 카페를 규칙적이고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일은 비공식적인 일상과 다름없다. 이곳에서의 관계는 카페 주인이나 직원, 우연히 만나는 이웃이 전부다. 공간이 주는 아늑함 외에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행위와 관계는 모종의 안도감을 준다. 비공식적인 일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 느슨한 커뮤니티와의 연대감은 동네 카페가 우리에게 전하는 선물과 같다.

서울 중랑천과 경춘선 철길이 감싸는 공릉1동에 들어서면 키가 작은 건물이 즐비하다. 고층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는 풍경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어색할 정도로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비스킷플로어는 그 작은 주택가 건물 1층에 마땅한 간판 하나 없이 자리 잡았다. 동네 목수에게 부탁해 벽돌로 만든 건물의 입면과 내부에 목재를 덧댔다. 손님들이 있을 공간과 커피가 만들어지는 공간 사이는 목재 기둥과 벽, 얕은 장식장으로 구분했다. 이 덕분에 매장에 들어서면 비밀스럽게 만들어놓은 아늑한 알코브에 들어가거나, 여느 카페에서 가장 먼저 자리가 채워지는 구석진 창가 자리를 독차지한 느낌이 든다.

본래 비스킷플로어는 경춘선 숲길을 마주한 꽤 널찍한 공간에 있었다. 바닥은 카페의 이름과 같이 비스킷 색상의 목재로 만들었는데, 넓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카페의 모습은 동네 사랑방과 다름없었다. 낮은 아일랜드 테이블이 바와 객석을 구분했지만 단골손님과 바리스타 사이에는 마땅한 구분 없이 따뜻한 인사가 오고 갔다. 경춘선 폐선 후 생긴 공원에는 밤낮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비스킷플로어는 그들에게 커피뿐만 아니라 안도감과 연대감을 전해줬다.

몇 가지 이유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매장을 열기까지 몇 개월의 공백이 있었지만, 단골들은 어김없이 커피 향을 따라 카페의 문을 열었다. 더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마주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일이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두 남매에게는 이로운 점이 더 많다. 바는 좁아졌지만 동선은 간결해져서 커피를 만들고 내어주는 일에 부담을 덜었다. 공간이 좁아지니 매장을 찾는 손님들과 호흡을 맞추기가 더 좋아졌다. 여전히 매장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동네 모습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오손도손 모여 책 읽는 모임도 운영할 수 있다. 연대감은 더 끈끈해지고 아늑함은 더 깊어졌다. 자리를 옮겨 무르익은 카페는 사람들의 일과에 빼놓을 수 없는 동선이 됐다.

마땅히 기댈 곳이 없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해주는 곳을 ‘제3의 공간’이라는 이론만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또 사람들이 위안을 얻는 공간이 오직 이 카페 한 곳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카페를 나서 찾은 편의점 주인의 유쾌한 인사말도, 공원 벤치에 앉은 아주머니들의 수다도,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이 피워내는 꽃과 이파리도 친절함을 잃은 어떤 세계와 달리 우리에게 안식처가 된다. 그러니 어떤 파도를 만나 날개가 젖었더라도. 우리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시 날 수 있는 것이다.

조원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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