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으로 접속하는 시스템에서 과연 익명이 보장될 수 있을까요. 블라인드처럼 서버가 외국에 있는 것도 아닌데…”(A부처 주무관) “지금도 기관별로 익명게시판이 존재하는데, 특정인에 대한 험담이나 욕설 및 정치적 색채가 짙은 글이 올라오는 등 부작용이 많습니다.” (B부처 과장)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일 ‘공공부문의 일하는 방식 개선 종합계획’을 공개한 직후 일부 공무원들이 들려준 반응이다. 행안부는 조직문화 개선대책의 일환으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조직문화 개선과 정책 방향을 놓고 토론할 수 있는 익명게시판이 이달 중 신설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2006년부터 운영하는 온-나라 시스템에 신설된다.
게시글 작성자의 기관명만 표출되기 때문에 기관 내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행안부의 설명이다. 게시판에서 제기된 문제점이 찬반 토론에서 20건 이상의 찬성 의견을 받으면 이를 관련 기관에 전달해 기관 내 불합리한 관행 타파를 독려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각 부처나 기관별로 익명게시판이 존재했다.
범정부 통합 익명게시판이 신설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른바 공무원판 ‘블라인드’다. 정부의 이 같은 시도에 대해 공무원들은 신선하다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직 내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이전부터 범정부 통합 익명게시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공무원판 ‘블라인드’를 보는 시각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20~30대가 대부분인 실무 주무관들은 ‘익명 보장’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 30대 주무관은 “정부에 대해 비판하거나 민감한 내용을 공개했을 때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조사하거나 검찰이 수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단순 홍보를 위한 형식적인 차원의 게시판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무관은 “익명게시판이 신설되는 온-나라 시스템은 공무원들이 실명 확인을 통해 접속해야 한다”며 “조사하면 누가 글을 썼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어느 공무원이 찍히는 것을 무릅쓰고 섣불리 정부를 비판하겠냐”고 지적했다. 블라인드가 국내 최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가입 과정이 전면 암호화돼 있는 데다 본사와 서버가 외국에 있기 때문에 압수수색 등이 쉽지 않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국·과장급 고위 간부들은 공무원판 ‘블라인드’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 부처 과장급 간부는 “게시판이 이유 없이 특정인을 일방적으로 험담하고 공격하는 ‘마녀사냥’ 공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관계를 떠나 일단 게시판에 실명이 올라가는 순간 마녀사냥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익명게시판에 도입된 정부 기관에서도 종종 이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
해당 부처 감사담당관실에서 사실관계를 가려내기도 전에 익명게시판의 찬성 수를 앞세워 여론재판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무분별한 여론몰이로 인한 부작용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운영했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폐지된 국민청원 게시판의 부작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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