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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美 보조금 조건…"검진표 같은 파일에 요구 사항 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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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무부가 27일(현지시간)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가이드라인’ 세부사항에는 엑셀, PDF 파일 14개가 첨부돼 있다. 파일을 열어보면 ‘종합검진 문진표’를 연상하게 하는 빽빽한 질문지(사진)가 뜬다. 하나같이 수율(양품 비율), 소재·화학품 같은 내부 기밀에 대한 질문들이다.

미국 내 설비투자를 대가로 보조금을 받으려는 기업은 의무적으로 이 서류를 완성해 상무부에 제출해야 한다. 반도체기업들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투자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가장 민감한 기밀 요구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28일 미 상무부의 보조금 가이드라인 요구 사항에 대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미국 기업들도 ‘OK’ 사인을 낼 수 없는 민감한 수준의 영업 비밀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게 수율이다. 수율은 전체 생산품 중 양품의 비율을 계산한 수치다. 수율은 반도체기업이 보유한 ‘공정 기술력’과 ‘생산 능력’의 척도이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도 일부만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정보다. 낮은 수율이 공개되면 잠재적인 고객사가 떨어져나갈 위험이 크다.

상무부 요구 사항엔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생산 첫해 판매 가격 △생산량 △판매 가격 등락 등 다양한 정보가 포함돼 있다. 공정에 투입되는 소재·화학품과 인건비, 연구개발(R&D) 비용도 의무 제출 사항이다. 수율만큼 민감한 정보로 평가된다. 예컨대 소재의 경우 반도체기업이 식각 공정에 어떤 불화수소를 쓰는지에 따라 제품 성능이 달라진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전자 TSMC 등이 미국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은 ‘소품종 주문 생산’의 특성상 수율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과이익 공유 위한 포석
미 상무부는 재무 정보도 요구했다. 특이한 점은 예상 현금흐름 등 수익성 지표를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산출 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사업의 경제성을 추산하는 데 필요한 금융 모델로 추정된다.

기업이 미국에서 예상보다 큰 이익을 남길 경우 일정액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목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28일 “초과 이익의 75%를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날 상무부는 “기업의 재정 상태는 반도체법 프로그램 심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잠재적 지원금의 규모와 유형, 조건을 검토하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공장 건설로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다른 국가에서 받는 보조금 등과 관련한 서류도 상무부에 내야 한다. 신청서는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자 하는 기업은 3월 31일부터, 나머지 반도체 공장과 패키징 등 후공정 시설은 6월 26일부터 받는다.

반도체업계에선 “미국 정부와의 협상이 관건”이란 얘기가 나온다. 한국 정부도 적극 관여해야 할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다른 국가에서 받는 지원금도 분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달 26일 미국 국빈 방문 때 한국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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