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현지 법원의 구금 기간 연장에 불복하기로 했다. 한국과 미국 등이 권 대표의 신병 확보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에선 그가 송환 거부를 염두에 두고 '시간 끌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권 대표는 한때 시가총액이 51조원에 달했던 암호화폐 테라USD·루나의 가격 폭락으로 전 세계 코인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긴 이른바 '루나 사태'의 주범이다.
권 대표 측 "현지 법원 구금 연장에 불복"
25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현지 외신은 권 대표의 변호인인 브란코 안젤리치가 "법원의 구금 기간 최장 30일 연장 결정에 대해 정해진 기간 안에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리고차에 있는 현지 법원은 지난 23일 체포된 권 대표와 그의 측근 한창준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에 대해 구금 기간 연장을 명령했다. 몬테네그로는 피의자 구금을 최대 72시간까지 허용한다. 법원은 구금 연장 배경에 대해 두 사람이 싱가포르에 주거지를 둔 외국인으로 도주 우려가 있고 신원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권 대표는 한씨와 포드리고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된 뒤 구금됐다. 그는 루나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직전인 작년 4월 한국을 떠나 해외 도피 중이었다.
권 대표 측은 구금된 동안 진행된 첫 피의자 신문에서 한국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변호인은 "모국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제기된 혐의에 대해 제대로 답변조차 할 수 없었다"며 "방어권을 박탈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권 대표가 영어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검사로부터 확인했다면서 이를 기각했다.
영어로만 소통, 韓 언론 기피하더니…
루나 사태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 사이에선 권 대표 측이 한국어 통역 미제공을 불복 사유로 주장한 데 대해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권 대표는 수년 간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을 거부하고 본인에게 호의적인 SNS나 일부 해외 언론에 한정적으로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루나 사태가 벌어지고 한 달 뒤인 작년 6월에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테라폼랩스의 공식 미디어 채널에 영어로만 문의해 달라'고 공지하며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로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영어가 아니라면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어 질의에도 답하지 않았다.
권 대표는 2020년 이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절 거부해 왔다. 그는 암호화폐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코리아가 테라폼랩스가 백서에 공개하지 않은 채 1조5600억원어치 코인을 사전발행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이후부터 한국 언론의 접촉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송환 늦어질 듯
몬테네그로 경찰은 체포 하루 만인 전날 권 대표와 한씨를 공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권 대표는 불법 입국 혐의도 추가로 받고 있다. 몬테네그로 당국은 권 대표가 이전에 머물렀다는 세르비아에서 몬테네그로로 넘어온 입국 기록을 확인하지 못 했다고 밝혔다. 몬테네그로 당국이 이에 대해 자체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권 대표 측이 법적 대응을 한다면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만큼 국내 송환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법무부는 권 대표의 검거 소식이 알려진 직후 몬테네그로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국도 권 대표 신병 확보에 나섰다. 미국 뉴욕 검찰은 권 대표가 체포된 직후 증권 사기, 시세 조종 등 8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몬테네그로 당국이 송환 결정을 내리더라도 권 대표가 '송환 거부' 소송을 내고 시간 끌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쌍방울그룹 전 재경총괄본부장 김모씨도 작년 말 태국에서 체포됐지만 송환을 거부한 채 현지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초 불법체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에야 자진 귀국해 지난달 28일 재판에 넘겨졌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