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취지와 다르게 확대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정책 입안 발표 이전에 당과 정부, 대통령실의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선행돼야 합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9일 첫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책 발표와 관련한 '당정일체'를 강조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69시간제' 도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불거진 정책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저출산 대책으로 20대 남성이 자녀를 3명 이상 가질 경우 병역을 면제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김 대표의 발언은 곧바로 무색해졌다. 국민의힘은 여론의 반발에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라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혼선에 이어 정부·여당의 '설익은 정책'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 일면 철회...취임 초기부터 이어진 정책 혼선
국민의힘은 △20대에 자녀를 셋 낳은 아빠의 병역 면제 △만 0세부터 8세 미만 아동 양육가정에 월 10만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18세 미만까지 월 100만원으로 상향 등의 내용을 담은 저출산 대책을 마련해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과감한 저출산 대책을 만들라'고 당부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20대에 아이를 셋 낳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정치권 안팎에선 '설익은 정책'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당에서 공식적으로 검토된 게 아니라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국민의힘에서 공식 제안한 바 없으며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여당이 설익은 정책을 내놓고 여론이 악화하자 철회하는 모습은 윤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이어졌다. 지난해 7월 교육부는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추진했다가 예비 학부모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박순애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해 교육부 장관의 공백 사태는 약 3개월 동안 지속됐다.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인 '주 69시간제' 역시 마찬가지다. 개편안 발표후 2030세대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은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3월 16일)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을 자청해 “의견을 수렴해 주 60시간이 아니고 그 이상 나올 수도 있다”(3월 20일)이라고 했다가 윤 대통령은 다음날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하면서 다시 한번 혼선을 빚었다.
또 대통령실은 내수 활성화를 위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식사비 한도를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왔으나 여론조사 결과 반응이 좋지 않자 관련 조항을 유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총선 앞두고 2030 지지율 추락 우려
주 69시간제부터 저출산 대책까지 청년 세대의 관심도가 높은 정책들이 연이어 논란만 일으키면서 당내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더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저출산 관련) 아이디어 검토안이 보도되면서 여론 악화는 물론 정부에도 부담을 줬다”며 “특히 저출산 대책은 2030세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안그래도 하락세인 2030 지지율이 더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지지자였다가 최근 지지를 철회했다는 심모씨(29)는 "주 69시간제 같이 깊은 고민 없이 정책을 일단 제시해 놓고 슬쩍 간을 본 다음에 아니다 싶으면 철회하는 모습에서 실망했다"며 "단순하고 추진력있는 깔끔한 이미지에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는데 오히려 이렇게 정책에 있어서 간보고 내빼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지를 철회한 이유에 대해 "정책적 무능함이 제일 큰 것 같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논란과 이준석 전 대표 내쫓기도 보기 좋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일을 잘 못한다"며 "좋게 다가오는 정책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지자인 이모씨(27)도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만 잘하면 된다. 정책적으로 유능하고 부동산, 저출산, 일자리 문제 잘 해결하는 모습 보여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 모두 청년 세대의 지지세를 확보하기 위해 '청년 대변인' 선발 등을 내놓고 있지만 결국 정책 효능감을 주지 못하면 그 어떤 노력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