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 파도의 첫 번째가 환경이었다면 두 번째는 인권이 될 겁니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지난 8일 ‘인권경영 및 인권실사의 A부터 Z까지’를 주제로 연 웨비나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웨비나는 한국경제신문사와 지평이 무크(부정기 간행물) <법무법인 지평 전문가들이 쉽게 풀어 쓴 인권경영 해설서> 발간 기념으로 공동 주최했다. 임 대표변호사는 “유럽연합(EU)뿐만 아니라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기업의 인권 문제 실사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세계가 ‘인권’이란 이슈로 뜨겁다”며 “기업 스스로 인권을 존중하는 경영체계를 서둘러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대세 흐름’ 된 인권실사
세계 곳곳에선 기업이 공급망 전역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하는 규제가 연이어 도입되고 있다. 독일은 올해 기업이 원자재 도입부터 제품 출하에 이르는 모든 생산 과정에서 인권침해 발생 여부를 실사하도록 하는 ‘공급망 실사법’을 시행했다. 법을 위반하면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는다. 독일 기업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도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독일에 앞서 프랑스(2017년)와 노르웨이(2021년)도 모든 종류의 인권 문제를 실사하도록 하는 법을 도입했다. 아시아에서도 태국이 2019년 비슷한 취지의 국가 인권정책 기본계획을 내놓은 데 이어 일본이 2020년 공급망 내 인권 존중을 위한 지침을 마련했다.
내년에는 유럽 대부분이 공급망 실사법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2월 인권과 환경, 지배구조에 대한 실사 의무를 담은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안’을 내놨다. 회원국과 ‘확립된 직·간접적 사업 관계를 맺은 기업’도 따라야 하는 지침이다.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27개 회원국이 모두 이 지침을 토대로 국내법을 만들어야 한다. 법조계에선 1년 뒤부터 회원국들이 관련 법을 시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권영환 지평 변호사는 “EU 집행위원회는 1만3000여 개 EU 기업과 4000여 개 역외 기업이 적용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EU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은 현지 수준의 행동강령을 마련해 실사하라고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프랑스에서 공급망 실사법 위반을 다루는 첫 번째 소송의 판결이 나오면서 기업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 소송은 시민단체들이 2019년 10월 “에너지기업 토탈이 우간다 유전 개발 및 송유관 운송사업 추진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원주민 토지를 취득하고 현지 환경을 파괴했다”고 지적하면서 제기했다. 권 변호사는 “토탈에 제기한 인권침해 내용과 개선 요구사항이 법원에 제출한 내용과 달랐다는 이유로 각하로 끝났지만 앞으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심층인터뷰로 실상 파악해야
제대로 된 인권실사를 위한 조언도 이어졌다. 민창욱 지평 변호사는 “제3자가 아니라 기업이 직접 실사계획을 짜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사업현황과 거래관계, 이해관계자, 동종·유사업계에서 확인된 리스크 등을 파악해야 실사 담당조직과 우선 실사대상을 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인권실사는 크게 △어떤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인권영향평가’ △평가 결과를 반영해 예방·관리·구제 방안 등을 마련하는 ‘통합 및 조치’ △조치가 적절했는지 이해관계자를 통해 확인하는 ‘추적 및 검증’ △이 같은 활동을 외부에 공개해 설명하는 ‘소통’의 절차로 진행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방법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임 대표변호사는 “인권실사를 일시적인 조사나 감사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같은 연속과정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사 과정에선 인권영향평가가 가장 중요한 단계로 꼽혔다. 민 변호사는 “실사를 맡은 임직원과 인권 문제를 겪은 당사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당사자를 통해 실제로 벌어지는 인권 문제와 잠재적인 위험요인을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취약한 이해관계자들 중 의미 있는 말을 해줄 만한 인물을 추려 집중적으로 대화하는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성/최한종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