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으로 인한 지체장애를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통증으로 인해 근육?관절기능에 장애가 있을 때 장애인복지법령에서 정한 지제기능장애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2019년 8월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에 불복한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 김 모씨의 손을 들었다.
태백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던 김 씨는 2012년 8월 태백시 매립장에서 집게차를 이용해 재활용 공병 재포장 작업을 하던 도중 톤백(대형 포대자루)을 집게차의 집게에 거는 과정에서 왼쪽 엄지손가락 끝마디에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 김 씨는 좌상지에 통증과 이에 따라 근력 저하의 소견을 근거로 마취통증전문의로부터 CRPS 소견과 함께 지체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태백시는 이후 김 씨의 장애등급 결정을 취소했다. 이에 불복한 김씨는 2019년 8월 태백시를 상대로 장해등급결정 처분취소 관련 서울고법에 항소해 1차 판결을 뒤집었다. 이후 4년 5개월 만에 원고 김 씨의 손을 들어주는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근력기능감소 등을 겪고 있는 원고의 증상이 통증으로 인해 발생했거나 통증을 수반한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복지법령에서 정한 지체기능장애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없음에 주목했다. 아울러 장애인복지법령에서 정한 신체장애의 의미, 장애등급 판정 절차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적시했다.
원고의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서로의 서상수 대표변호사는 “고등법원 판결을 그대로 인정해준 대법원 판결이 지난 2일 나왔다”며 “당연히 해줬어야 하는 장애인정 관련 8년 간의 시간이 낭비된 것에 대한 실망이 큰 만큼, 현실적 장애상태가 반영될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CRPS환우회 역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면서 “CRPS관련 보다 현실적인 장애 판정 기준을 만들어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CRPS 환자가 없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통증학회 또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CRPS를 포함한 만성통증환자들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판결이 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통증에 의해 유발된 신체 기능의 감소가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첫발을 디딘 중요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학회 측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고 지적했다. 현 장애인복지법령에 의한 CRPS 장애평가는 병의 중증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동시에 평가방법도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통증의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CRPS 환자 입장에서 지금까지 통증으로 발생한 장애는 장애등급판정에 활용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질환의 일부 증상인 관절가동범위의 제한 및 근력 약화로만 장애여부를 판단 받고 있다. CRPS에 대해 장애 판단을 마취통증의학과에서도 할 수 있게 2021년 4월에 시행령이 변경됐다. 대한통증학회 관계자는 “마치 축구선수의 실력을 육상코치가 판단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CRPS 환자의 장애등급 판정이 내려져 왔었다”며 “앞으로 대한통증학회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합리적인 장애평가 안을 제시하는 데 학회의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