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 자체 수익모델 구축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투자 혹한기에 스타트업의 성장성 대신 수익성이 크게 강조되면서다. 추가 투자 유치가 이전보다 어려워지면서 스타트업들이 '흑자 전환'을 준비하는 시점도 빨라졌다.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오랜 기간 적자를 내더라도 사업부터 키우고 투자만 잘 받으면 된다는 기존 성공법칙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수성가' 스타트업 떴다
3일 알라미 앱을 운영하는 딜라이트룸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92억원, 영업이익 11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50%, 영업이익은 93%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57% 수준이다. 딜라이트룸은 2012년 창업 후 외부 투자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신재명 딜라이트룸 대표는 "초기부터 돈보다는 다른 부분들이 더 부족하다고 봤다"며 "투자를 받는 대신 앱으로 번 돈을 효율적으로 쓸 근육을 키웠다"고 말했다. 마케팅 비용을 공격적으로 써서 매출을 확 올리기 보다는 ROI(투자자본수익률)가 잘 나오는 선에서 유지하고, 대신 광고 모델을 고도화했다. 딜라이트룸의 지난해 광고 매출은 약 13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했다.
건강관리 앱 캐시워크로 알려진 넛지헬스케어 역시 외부 투자 없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3분기 매출은 577억원으로 전년 매출(569억원)을 넘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78억원을 기록했다. 나승균 넛지헬스케어 대표는 "초반에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면서 외부 자금 수혈 없이도 흑자 운영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육아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인 코니바이에린도 외부 투자를 받아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대신 자체 SNS 홍보를 통해 이름값을 높였다. 코니바이에린의 아기띠는 전 세계 70개국에서 100만 개가 팔렸다. 에브리타임 운영사인 비누랩스 역시 투자를 받지 않고도 자체 플랫폼 광고와 제품 판매로 2019년 이후 매출을 연간 2배씩 늘렸다.
'계획된 적자' 모델은 줄줄이 폐업
이들 회사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외부 투자를 받고도 자체 수익모델을 만드는 데 실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최근 늘었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벤처투자는 전년보다 38.6%, 4분기엔 43.9% 급락했다.호황기 자금 수혈이 쉬울 때는 추가 투자를 통해 돈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만 시장이 얼어붙어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구조조정이나 폐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6월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를 시작으로 피트니스센터 예약 서비스 라이픽, 모바일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유저해빗, 패션 플랫폼 힙합퍼 등이 투자 유치에 실패해 문을 닫았다. 수산물 당일 배송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오늘회(오늘식탁)도 지난해 9월 서비스를 중단했다가 최근에서야 일부 서비스를 재개했다.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보고플레이도 운영 중단 위기에 처했다. '계획된 적자'라는 명분 아래 덩치를 키워 거래액 2300억원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부채 역시 526억원이나 쌓인 탓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분야와 상관없이 자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의 폐업 비율은 치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돈 벌어야 살아남는다"
본격적인 수익화를 시도하는 스타트업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자금 경색이 심해지면서 미래 성장성보다는 당장의 수익성을 증명해낼 수 있느냐 여부가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지면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적자가 나더라도 투자만 잘 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며 "추가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회원 수가 3200만명에 달하지만 거래 수수료 모델이 없는 당근마켓은 지역 전문 마케터를 위한 광고 솔루션을 출시했다. 지역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큰 규모의 광고 집행을 원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도 광고 유치에 나선 것이다. 인공지능(AI) 기반 학습 플랫폼 콴다를 운영하는 매스프레소는 과외 매칭 서비스인 콴다괴와 서비스를 출범시켰다. 프롭테크 스타트업인 직방은 홈 사물인터넷(IoT) 시장을 공략하며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VC들도 신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기존 투자기업들이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데 더 신경 쓰고 있다는 평가다. 한 VC 관계자는 "기업들이 비즈니스모델(BM)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확실한 기술력이나 수익모델 없이 이용자나 거래액만 늘려 덩치부터 키우는 방식은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