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적극적인 반도체 감산 대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택했다. 수요 위축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올 상반기 반도체 사업에서 ‘조(兆) 단위 적자’가 유력한 상황에서 나온 최고위 경영진의 결정이다. 단기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생산능력과 기술력을 높여 돌아올 호황기에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31일 지난해 4분기 확정 실적을 공개했다. 4분기 매출(70조4600억원)과 영업이익(4조3100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2%, 68.9% 줄었다.
반도체 불황이 영업이익을 끌어내렸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27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6.9% 급감했다. 메모리사업부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재고가 쌓인 고객사가 구매를 줄이면서 D램 가격이 지난해 하반기에만 34% 급락한 영향이 컸다.
실적 급감에 부담을 느낀 삼성전자 경영진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투입량을 조절해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을 검토했다. 감산하면 공급량이 줄어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멈추고 수요가 살아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날 공개한 결론은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콘퍼런스콜에서 “최근 시황 약세가 당장 실적에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 투자(CAPEX)는 전년(약 48조원)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고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생산량 조절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술적 감산’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생산라인 효율화와 첨단 공정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라며 “단기적으로 비트(생산량)에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시장의 수요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불황을 돌파하겠다는 의미”라며 “삼성전자가 미래 대비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감산’ 기대가 사라지면서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3.63% 하락한 6만1000원에 마감했다.
황정수/정지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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