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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경악시킨 악마의 소리…'불후의 명작'으로 살아나다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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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는 소설 같은 소문이 있다. 300년간 이어진 소문의 내용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와 비슷하다. 악마로부터 신비의 힘을 얻기 때문이다. 루머의 주인공은 주세페 타르티니(1692~1770)의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바흐나 비발디와 같은 작곡가에 비하면 무명에 가까웠던 타르티니의 이름을 지금까지 회자하도록 해주는 작품이다. 악마가 들려준 바이올린 소리를 옮겨놨다니.

작품을 둘러싼 일화는 바로크 시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이탈리아 작곡가 타르티니가 작곡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던 17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르티니는 어느 날 꿈에서 악마와 마주한다. 악마의 바이올린 솜씨는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고 당시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고난도 기교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악마의 연주에 소스라치게 놀란 타르티니는 꿈에서 깨자마자 바이올린을 들고 자신이 들은 음악을 악보로 적어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그의 대표작 ‘악마의 트릴’이다.

그러나 정작 타르티니는 세기의 명작을 세상에 내고도 기뻐할 수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적어낸 작품이 악마가 들려준 연주 실황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다고 생각해서다. 괴이한 일을 겪은 타르티니는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자신의 악기를 깨부수고 영원히 음악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이는 영국의 음악학자 찰스 버니가 1771년 출판한 기행서에 기록된 에피소드다. 앞서 타르티니가 사망하기 이전인 1769년에도 프랑스 천문학자 랄랑드가 자신의 서적에 비슷한 내용을 적어낸 바 있다. 실제 ‘악마의 트릴’을 둘러싼 일화가 유럽 전역에 퍼진 건 이들이 거론하기 훨씬 이전부터다.

통상 클래식 음악계에서 ‘악마’와 관련된 일화는 초월적인 작품성과 초고난도 기교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생겨난다. 당시의 음악적 수준에서 도저히 인간의 머리와 손에서 구현된 것이라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을 때 내려지는 훈장인 셈이다.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도 그렇다. 한 손으로 두 개 이상의 현을 잡고 그어야 하는 ‘중음(重音) 주법’과 아주 빠른 속도로 두음을 교대로 연주하는 ‘트릴’을 동시에 실현하는 기교는 당시 청중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진보적이었다.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교를 완벽하게 소화해 타르티니의 연주를 본 청중은 ‘그의 왼손에는 여섯 손가락이 달려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초인적인 연주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평생 ‘악마에게 영혼을 판 연주자’란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악마의 트릴’ 작품에 대한 소문이 유럽 전역에 퍼지며 사실처럼 여겨지던 순간에도 타르티니는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 일화 내용이 모두 사실이었기에 침묵을 지켰는지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말을 아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행동이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작품의 생명력을 늘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다.

타르티니에게는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20세기 명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가 작품을 편곡한 이후부터는 이 버전이 주로 무대에 오른다. 지금 사용되는 바이올린은 바로크 시대와 모양이나 주법 등에서 차이가 나는데 크라이슬러의 편곡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편곡 버전은 타르티니의 화려한 색채와 유려한 선율 진행에 한 단계 더 고도화된 기교를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G단조 바이올린 소나타인 이 작품은 세 개의 악장과 카덴차로 구성돼 있다. 느린 1악장에서는 바이올린의 애수 띤 음색이 서정적인 선율과 만나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마음껏 드러낸다. 화려한 트릴 연주보다는 홀로 두 개의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중음 주법이 주가 되는 악장이다. 한 사람의 손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선율이 진행하는 움직임에 집중한다면 작품 본연의 풍부한 색채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강렬한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로 시작하는 2악장은 이전과 대비되는 빠른 악곡으로 16분음표의 생동감 넘치는 리듬을 특징으로 한다. 이 악장부터 본격적으로 간결한 터치의 트릴 연주가 이어진다. 장렬하면서도 통통 튀는 작품 특유의 매력이 살아나는 구간이다. 한 마디에 한두 개꼴로 끊임없이 등장하는 트릴 연주를 가벼운 음색으로 소화하면서도 전체의 음악적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연주하는 것이 관건이다.

‘악마의 트릴’의 진가가 살아나는 악곡은 3악장이다. 무겁고도 장엄한 분위기에서 느리게 시작하는 이 악장에서는 격렬한 악센트를 기점으로 연주 속도가 빠르게 변하면서 초고난도 기교가 펼쳐진다. 여러 음을 동시에 짚은 상태에서 남은 손가락을 사용해 트릴 연주를 끝없이 이어가는 식이다. 악기를 받치고 있는 엄지손가락만 빼고 왼손의 모든 손가락이 위치를 수시로 바꿔가며 움직인다. 이때 각 손가락은 개별 지시에 맞게 움직여야 하기에 엄청난 연습량과 섬세한 힘 조절이 요구된다.

기교의 난도가 정점에 달하는 구간은 무대 위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홀로 연주하는 ‘카덴차’. 카덴차에서는 왼손이 옥타브를 넘나들며 짚어내는 수십 개의 화음, 쉼 없이 몰아치는 트릴이 일시에 불러일으키는 극도의 화려함과 폭발적인 에너지에 온 감각을 집중해야만 작품의 진가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문화부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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