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윤석열 정부를 겨냥해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국정을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여당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가면서도 앞선 '영수회담' 제안이 여전히 유효하다고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대통령 4년 중임제,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등 개헌 카드도 내놨는데, 이는 검찰 수사에 쏠린 시선을 분산해 분위기 전환을 꾀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또 이 대표는 최근 자신과 측근을 향한 검찰 수사를 두고 '당이 사법 리스크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데 대해선 "사법 리스크가 아닌 검찰 리스크"라고 표현해달라고 요구했다. '김건희 여사도 똑같이 수사하라'는 취지의 항변이 당내에서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연관 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입장을 내놨다.
"尹, '말 폭탄'으로 국민 불안·시장 혼란 증폭"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는 남북 정세와 경제 위기를 엮어 윤석열 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집권 이후 8개월이 넘도록 야당 대표와 대화하지 않은 유일한 정부라고 지적하면서 영수 회담도 다시 요청했다.이 대표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 안보 참사까지 더해지면서 '코리아 리스크'가 전면화되고 있다"면서 "민생경제가 끝을 알 수 없는 시련의 터널로 접어든 엄혹한 시기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가파르게 높아지며 경제에 더 큰 짐을 지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안보 무능을 감추기 위한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말 폭탄'으로 국민 불안과 시장 혼란만 증폭됐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그간 정부는 말로는 협치를 내세우면서 권력 기관을 동원한 야당 파괴, 정적 죽이기에 골몰했다"며 "국민과 야당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국정 난맥과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위 '3대 개혁'도 검찰의 영장 집행처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다간 거센 저항만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했고, 그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일방통행 국정'을 중단하고 실종된 정치의 복원에 협력해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표는 "지금 즉시 국정 기조를 전면 전환해야 한다"며 민생경제 위기 돌파를 위한 '3대 해법'을 제시했다.
3대 해법은 △ 30조원 규모의 긴급 민생 프로젝트 △ 경제라인을 포함한 내각의 대폭 쇄신 △ 국회·정부·기업·노동계 등이 참여하는 범국가 비상경제회의 구성 등이다.
"기본사회 대전환 시작하겠다"
이 대표는 또한 올해 자신의 대표 브랜드로 꼽히는 '기본시리즈'를 기필코 완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당내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해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이 대표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 국가가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는 '기본사회'를 준비해야 한다"며 "기본소득의 완성을 향해 단계적으로 나아가고, 기본주거로 주거 불안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금융 약자들이 살인적 고금리의 대부업체와 불법 사채시장으로 몰리고 있는데, 기본금융으로 보편적인 금융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며 "여가, 교육, 의료, 교통, 통신과 같은 기본서비스를 단계적?순차적으로 도입하면서 기본사회의 지평을 차근차근 넓혀가겠다"고 덧붙였다.
개헌 카드 꺼낸 李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하자"
이 대표는 올해로 36년째를 맞는 '87년 헌법 체제'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이날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띄운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도 보인다.이 대표는 "이미 수명을 다한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 정치의 실현과 국정의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며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연합정치와 정책연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와 감사원 국회 이관 등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조치 또한 필요하다"며 "생명권, 환경권 등 국민 기본권과 자치분권 강화, 국민 발안, 국민 소환 등의 직접민주주의 확대, 5.18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같은 사안들도 이제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고 진정한 민의가 대변되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일은 윤 대통령도 관심 있는 사안인 것 같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방법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제시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반드시 중대선거구제만 하겠다는 취지는 아닐 것이고 그 제도를 통해 표의 등가성을 회복하고 지역주의를 완화하자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이는 저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지만, 중대선거구제만이 유일한 방안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사법 리스크 아닌 검찰 리스크"
지난 10일 이른바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이 대표는 이날 또다시 결백을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자신과 측근을 향한 검찰 수사를 두고 '당이 사법 리스크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데 대해선 "사법 리스크가 아닌 검찰 리스크"라고 반박했다.
그는 '성남FC 말고도 대장동 의혹 등으로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는데, 그때 또 검찰 출석에 응할 생각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세상일이라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가정을 해서 말씀을 드리면 끝이 없을 것 같다"면서도 "가급적이면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검찰 리스크라고 말씀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답했다.
이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부당한 처사이긴 하지만, 검찰의 소환 요구에 당당하게 임했다"며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에 조사에 임했지만, 검찰의 요구들은 매우 부당하고 옳지 않은 처사라는 지적을 다시 한번 드린다"고 부연했다.
본인을 향한 수사가 이뤄질 때마다 당내에서 '김건희 여사도 똑같이 수사하라'는 취지의 항변이 나오는 데 대해선 "그 두 사안을 연관 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저에 관한 검찰의 정치적 공격은 없는 사실을 억지로 만드는 것이고, 김 여사에 관한 부분은 명백한 증거들이 너무나 많이 드러나고 있지 않나. 연관 지으면 제가 너무 억울하지 않겠냐"고 했다.
최측근인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된 데 대한 유감을 표명해달라는 요청에는 "검찰이 녹취록이라고 하는 분명한 근거를 놔두고 그에 상치되는 번복된 진술에 의존해서 어떤 의사 결정을 하는 데 대해 매우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