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시장 규제를 대폭 완화한 1·3 대책을 내놨지만, 청약 시장에는 찬바람만 불고 있다. 대출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3년 전엔 흥행한 가격인데…478가구 모집에 28명 그쳐
12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정부의 1·3 대책 발표 이후 분양에 나선 아파트 단지들이 흥행에 참패하고 있다. 대구 동구 신천동 '힐스테이트 동대구 센트럴'은 478가구에 대한 1·2순위 청약에 28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0.05대 1에 그쳤다. 10일 1순위 청약에 10명이 신청했고 11일 2순위 청약에 18명이 지원했다.힐스테이트 동대구 센트럴은 지하 6층~지상 36층, 아파트 4개 동, 전용 84~124㎡ 481가구, 오피스텔 1개 동, 전용 84㎡ 62실 등 총 543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분양가는 전용 84㎡가 5억8200만~5억9900만원, 전용 106㎡ 8억7400만~8억9800만원이다.
2020년 분양에 나서 평균 55.3대 1의 경쟁률을 거둔 인근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했지만, 결과는 크게 달랐다. 일반분양 물량 3분의 1인 158가구를 모집한 전용 84㎡ B(158가구) 지원자는 2명에 불과했다. 같은 가구 수를 모집한 전용 84㎡ A 지원자도 10명뿐이었다
규제 완화 이후 수도권 분양시장에 처음으로 나온 대단지 아파트 '평촌 센텀퍼스트'도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이 아파트는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에 지하 3층~지상 38층, 23개 동, 전용 36~99㎡ 2886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일반분양 물량도 1150가구에 달했지만, 1·2순위 청약 접수 결과 350명이 신청하며 경쟁률은 0.3대 1에 그쳤다.
전용 36~84㎡ 8개 주택형 가운데 전용 84㎡는 경쟁률이 1대 1을 넘겼지만, 나머지는 모두 미달됐다. 전체 물량의 약 75%에 해당하는 856가구를 모집한 전용 59㎡ 신청자는 148명에 그치며 708가구 미달을 기록했다. 147가구가 나온 전용 72㎡도 30명만 신청해 117가구 미달됐다. 전용 46㎡는 84가구 가운데 75가구가, 전용 36㎡는 18가구 중 3가구 미달이다.
이 단지 분양가는 전용 59㎡가 7억4400만~8억300만원, 전용 84㎡가 10억1300만~10억7200만원이었다. 오는 11월 입주가 예정된 후분양 단지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았다. 발코니 확장과 천장형 시스템 에어컨, 붙박이장이 무상으로 제공돼 별도 유상 옵션은 없다.
정부는 지난 3일 △중도금 대출 보증 분양가 상한 기준 12억원 폐지 △전매제한 기간 단축 △실거주 의무 폐지 등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조치를 내놨다. 오는 30일부터는 특례보금자리론 접수도 시작된다. 1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소득과 관계없이 연 4.65~5.05%(우대 3.75~4.05%)에 최대 5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는 제도다.
규제 풀어도 여전한 냉기…"차라리 분양 미룬다"
지난 정부에서 높아진 청약 문턱을 다시 낮추고, 최대 8%인 시중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절반 수준으로 대출이 가능해지는 등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부동산 시장 기대감은 높아졌다. 1·3 대책 발표 이후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대단지인 평촌 센텀퍼스트는 자연스레 향후 분양 시장을 가늠할 기준이 됐다. 평촌 센텀퍼스트의 흥행 참패로 청약 시장 냉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이에 따라 분양을 미루는 단지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홍은13구역 재개발 조합은 이달 예정됐던 '서대문센트럴 아이파크' 분양을 연기하기로 했다. 입지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성공적인 분양을 기대하기에는 시장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 역촌동 역촌1구역을 재개발하는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시그니처'도 분양 시기를 미뤘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대출 이자 부담도 높아지면서 실수요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매우 높아졌다"며 "실수요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분양가 산정이 중요해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분양가 할인 등의 조치가 이어진다면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선호도 높은 로열 동·층 신축 아파트로 내 집을 마련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