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관리자를 속여 다른 사람이 흘린 지갑을 자기 것이라며 가져간 사람은 절도죄가 아니라 사기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1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절도 혐의로 기소된 A 씨 상고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21년 5월 서울 종로구의 매장을 찾았다가 매장 주인에게서 "이 지갑이 당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른 손님이 떨어뜨린 지갑을 주인이 보관하고 있다가 근처에 있던 A씨에게 물은 것이다.
A씨는 "내 것이 맞다"며 지갑을 받아서 들고 매장을 빠져나갔다. 이후 A 씨는 1심에서 "내 지갑인 줄 알고 가져갔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형법상 절도죄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것을,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을 받아내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2심은 1심 형량을 유지하면서도 주위적 공소사실(절도죄)은 무죄로, 검찰이 항소심에서 추가한 예비적 공소사실(사기죄)은 유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을 지갑 주인으로 착각한 매장 주인의 행위를 이용해 지갑을 취득했지만, 재물을 탈취로 취득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A씨 행위를 재물 절취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매장 주인은 피해자가 놓고 간 물건을 습득한 사람으로서 지갑을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지위에 있었다"며 "피해자 지갑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매장 주인은 처분 권능과 지위에 기초해 지갑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A씨에게 지갑을 교부했다"며 "A씨가 지갑을 취득해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상태가 됐으므로 이는 사기죄의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현덕 한경닷컴 기자 khd998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