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도쿄 출장은 늘 설렜다. 당시 ‘핫플’이던 하라주쿠에 가면 서울엔 아직 도착하지 않은 1년 뒤의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까. 30년간 변함없는 맛의 소바집만이 나를 설레게 한다. 그렇게 놀랍던 도쿄의 역동성은 어디로 갔을까.
미국인이 존경하는 기업가는 단연 에디슨과 스티브 잡스다. 그들은 서부의 총잡이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홀연히 나타나 빠르고 정확하게, 또 과감하게 행동했다. 그렇게 세상을 바꿔놓고 석양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 그들은 멋있었다! 에디슨은 전자기학이 교수들의 연구실에서 산업의 기술로 넘어오던 때에 청년기를 보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공대 인재들로 세계 최초의 민간연구소인 ‘멘로파크랩’을 세웠다. 고전물리 기반의 산업혁명으로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그 시절, 전자기학으로 미국이 패권을 빼앗아오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미국에 개방당한 일본은 대대로 내려오던 가문의 비기, ‘일단 베끼고 나서 개선하기 신공’으로 미국을 맹추격했고 태평양에서 맞짱까지 붙었다.
잡스는 컴퓨터 기술이 연구실에서 산업으로 넘어오던 그 시절, 실리콘밸리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스탠퍼드대 인재들로 쿠퍼티노 연구실을 채웠다. 패전 후, 다시 한번 놀라운 신공으로 맹추격하던 일본에 숨이 넘어가던 미국을 되살린 디지털 혁명의 시작이었다. 일본은 그 ‘신공’으로 추격하기에 실패했다. 일본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기’에는 가진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잡스는 스마트폰 기술이 연구실에서 산업으로 넘어오던 그 시점에도 실리콘밸리 현장에 있었고 또 한 번의 기회를 낚아챘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일본의 카메라, 녹음기, 전화기, 팩스 등의 기술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격차는 현격해졌다. 그렇게 두 번의 전환기를 놓친 일본은 놀라운 역동성을 영영 잃어버렸다.
미국 창업 경제의 핵심은 뭘까. 산업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기반 기술이 연구실에서 산업으로 넘어오는 전환기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이 산업으로 넘어오던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마누라, 자식 빼고 싹 바꾸는 환골탈태를 했다. 벤처라는 미국의 비기를 들여와 네이버와 카카오가 탄생하는 씨앗을 뿌렸다. 지금 다시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전자기학, 컴퓨터, 스마트폰에 이어 바이오, 전기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 기술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산업으로 넘어오고 있다. 이미 가진 것에 집착해선 안 된다. 우리의 진짜 미래는 반도체나 배터리처럼 갈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쪽이 아니라 산업으로 속속 넘어오는 기반 기술을 산업에 적용하려는 한국형 잡스와 에디슨이 이끄는 스타트업의 빠른 걸음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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