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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휩쓴 최악의 인플레이션에…사라지는 '아메리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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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타난 최악의 인플레이션 여파로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산층의 구매력은 대폭 축소했지만 저소득층의 구매력은 증대됐다. 물가상승이 서민 계층을 무너트린다는 통념이 올해는 빗나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플레 직격타 맞은 美 중산층
지난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의회예산국(CBO)의 최근 연구 결과 올해 미국 중위소득 가구의 급여에 따른 구매력은 지난해보다 2.9% 감소했다.

반면 하위 20% 저소득 가구와 상위 가구의 구매력은 오히려 각각 1.5%, 1.1%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중위소득은 연 7만784달러(약 8978만 원)로 나타났다.

4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점점 더 많은 중산층 가구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분석이다.

제이비어 자라벨 런던정경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20~2022년 중위소득 가구가 15%를 훌쩍 넘는 물가 상승을 경험한 반면 최상위·최하위 가구의 경우 14% 이하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플레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인플레 국면에서 중산층 가구의 구매력 감소에도 오히려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제고된 건 이례적이다. 심각한 구인난 속에 저숙련 일자리 찾기가 쉬워진 데다 임금수준 역시 상승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데이비드 오토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하위 15% 임금근로자의 경우 (인플레가 극심한) 지난 1년 동안에도 실질임금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중산층 가구의 소비 행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휘발유 등의 가격 인상이 가장 컸던 점도 중산층 가구가 무너진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자라벨 교수는 “저소득층의 경우 (중산층보다)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동차나 휘발유 등 변동성이 큰 제품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중산층이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미시간대학 연구에 따르면 ‘현재 자신의 재정 상황이 나빠졌다’고 응답한 중산층 가구 비율은 저소득층 가구와 비슷한 비율로 떨어졌다. 2020년에는 중산층 가구는 고소득층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계 상황을 낙관했다. 하지만 올해 인식이 바뀌었다. 중산층 가구 대부분은 재정 상황이 악화한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코로나19로 임금 격차는 축소
중산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임금 격차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구인난이 주요 원인이란 분석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에 지속해서 벌어지던 미숙련 노동자와 숙련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했다. 2020년 2월 이후 지금까지 시간당 평균 임금은 15% 가까이 증가했다. 생산직 노동자의 경우 17% 늘었다. 생산직 노동자의 시급은 지난 11월 총 시급의 85%에 달했다. 시급 기준으론 상위 15%에 해당했다는 설명이다.

학력별 임금 격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1997~2017년까지 30년간 대학 졸업자의 임금과 고등학교 졸업자 임금 상승률 격차는 매년 0.5%포인트씩 벌어졌다. 지난해 들어 임금 격차가 0.5%포인트 밑으로 떨어졌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한 탓에 40년 만에 처음으로 임금 불평등이 축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시장에서 불균형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졸 노동자 수는 2020년 2월에 비해 5% 증가한 반면 고졸 노동자는 4% 감소했다. MIT 연구진은 “코로나19로 퇴사하는 저임금·미숙련 노동자가 일터를 대거 떠났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며 고임금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직, 개발자 등 고임금 노동자들이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가족을 돌보는 데 시간을 할애하면서 재택근무에 대한 노동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는 설명이다.

스탠포드대학 연구진은 재택근무로 노동자가 얻는 ‘편의 가치’를 임금으로 환산한 결과 연봉 15만달러 이상의 고임금 노동자의 경우 임금의 6.8%를 차지했다. 하지만 연봉 2만~5만달러 사이의 노동자의 경우 1~2%에 불과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고용주들이 사무실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저임금 근로자로 대체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도 있다. 전쟁으로 인해 세계화 열기가 식게 되자 미국은 저임금 국가에 구축한 생산 기지를 자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공급 안정성이 비용 절감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2020년 미국 정부가 200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원을 약속하며 리쇼어링 열풍이 불자 생산직 일자리가 대거 늘어났다.
50년 동안 가늘어진 미국의 허리
미국 중산층의 붕괴는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50여년 동안 미국의 중산층이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중산층의 비율은 50%로 1971년(61%)보다 1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저소득층은 25%에서 29%로 늘었고, 고소득층도 14%에서 21%로 증대됐다.

국민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줄어들었다. 1970년에 미국 국민 총소득에서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62%였지만 2020년에는 42%로 떨어졌다. 고소득층의 임금의 비중은 50%로 불어났다. 1970년에는 고소득층의 비중은 29%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저소득층의 비중은 8%에서 10%로 미세하게 변동했다.

고소득층의 임금 상승률이 중산층을 추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소득 상위 20%의 임금 중윗값은 1971년 13만 달러에서 2021년 21만 9572달러로 늘었다. 반면 상위 20~80%를 차지하는 중산층 임금의 중윗값은 1970년 5만 9934달러에서 2020년 9만 131달러로 늘었다. 50년 동안 고소득층 임금은 약 60% 증대되는 동안 중산층은 51%가량 늘었다.

올해 인플레이션으로 생활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아메리칸드림’이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악몽)'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산 가치가 불어나는 속도가 임금 상승을 크게 앞지르는 가운데 생활비 압박도 커져서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차드 리브 이사는 “중산층 노동자에겐 이제 '얼마를 버는 지'가 중요하지 않다"며 "그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있는 지'가 더 중요해진 시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생활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3H(건강관리, 고등교육, 주거환경)'와 관련된 비용을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생활비 부담은 곧 세대 갈등으로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타임스지에 따르면 미국 중산층 중위 소득은 2001년 이후 지금까지 9% 상승했다. 하지만 대학교 등록금은 같은 기간 64% 뛰었고, 의료비는 두 배 이상 늘었다. 1980년대에는 35~44세 인구의 70%가 부동산을 보유했지만 2018년에는 60% 밑으로 떨어졌다.

리브 이사는 "임금 상승의 둔화와 자산 가치 급등 현상은 느닷없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속해서 벌어진 간극을 방치했을 뿐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올해 그 폭탄이 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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