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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사심도 없지만 이직·창업도 싫다…집단 무기력증 빠진 日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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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들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2013년 9월 세계 4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설립자인 헨리 크래비스는 미국 뉴욕을 방문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베 총리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의기양양하게 “바이 마이 아베노믹스!”라고 외치며 일본 투자를 권하던 때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일본의 경영인들이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구조개혁을 미루고 있다는 게 크래비스가 말한 ‘움직이지 않는 리스크’였다. 그는 이미 10년 전 활력을 잃어가는 일본과 일본인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무기력한 직장인

일본의 경영인만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다. 일본 직장인은 세계에서 가장 무기력하다. 미국 갤럽이 올초 발표한 종업원 근로의욕(인게이지먼트) 지수에서 일본은 5%로 세계 139개국 가운데 132위였다. 세계 평균은 20%,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은 34%였다. 중국(17%)과 한국(12%)도 일본 직장인보다 근로의욕이 2~3배 높았다.

인재정보회사인 파솔종합연구소가 아시아·태평양 14개국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최근 시행한 조사에서 일본인들은 ‘현재의 직장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52%)’와 ‘이직(25%)하거나 창업(16%)하고 싶다’는 응답자 비율(복수 응답 가능)이 모두 최저였다. 한국의 직장인 가운데 이직이나 창업을 희망하는 응답자 비율은 각각 40%와 30% 수준으로 일본 직장인보다 크게 높았다.

일본 직장인들은 지금 하는 일에 애착도 없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에너지도 없는 것이다. 일본 최대 인재정보 회사인 리크루트는 “일본인에게 수동적인 성실함은 있어도 자발적인 적극성은 결여돼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국 가운데 가장 느린 승진이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지난해 말 조사에서 일본 직장인들의 과장 진급 연령은 평균 38.6세, 부장은 44세였다. 중국은 28.5세에 과장, 29.8세에 부장으로 승진했다. 미국도 34.6세면 과장이 되고 37.2세에 부장 자리를 꿰찼다.
상승 욕구 꺾는 디플레이션
직원들에 대한 투자에 극도로 인색한 일본 기업의 풍토는 일본인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인재 투자 규모는 1995~1999년 1.94%에서 2010~2014년 2.08%로 늘었다. 프랑스(1.78%)와 독일(1.20%), 이탈리아(1.09%)는 15년 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1995~1999년 GDP의 0.41%였던 인재 투자 규모를 2010~2014년 0.1%로 더욱 줄였다.

일본의 경영인들이 무기력한 직원들을 자극하거나 독려하지도 않는다. 경쟁에서 밀린 조직원이나 부진한 사업부를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온정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진한 인재와 사업을 전력을 다해 키우지도 못하기 때문에 경영자원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토 구니오 히토쓰바시대 CFO교육연구센터장은 “사업은 점점 쇠퇴하는데 사원은 종신고용 상태여서 서로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대다수 일본 기업에서 무기력한 상태가 계속된 결과 일본이 정체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인들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주된 원인으로 디플레이션을 꼽는다. 20년 넘게 소득도, 물가도 오르지 않는 디플레가 이어지면서 일본인의 승진 등 신분 상승 의욕을 거세시켰다는 것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인은 월급이 잘 오르기보다 종신고용이 보장되는 직장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며 “구성원의 상승 의욕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야말로 디플레의 무서움”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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