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사업연도에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A기업은 최근 B회계법인과 외부감사 재계약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다. B회계법인이 기존 감사보수 8500만원보다 10배가량 많은 8억을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의견 거절을 받은 기업은 기존 회계법인으로부터 재감사를 받아 적정 의견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A기업 관계자는 “의견 거절을 받으면 관리 종목으로 지정되고 해당 사유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상장폐지 심사에 오른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회계법인이 비용을 부르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회계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산하에 중소기업 회계지원센터가 지난 10월 출범했다. 홍순욱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회계기준 질의회신 작성 지원, 내부회계관리제도 컨설팅, 감사 계약 애로사항 상담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회계 부담을 줄일 것”이라며 “센터 개소 1개월 만에 30여건의 상담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최근 센터가 코스닥시장과 코넥스시장 상장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회계처리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회계전문인력이 없다”고 답한 기업이 81%(중간집계 314개사 기준)를 기록했다. 회계업무를 회계사가 아닌 일반 직원이 담당하는 기업이 10곳 중 8곳에 달한다는 의미다. 기업들이 느끼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는 △회계전문인력 채용 △내부회계관리 전담조직·인력 확보 △회계비용 증가 등이 거론됐다.
센터는 중소기업의 회계처리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회계기준원 질의서 작성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금융감독원·한국공인회계사회·한국회계기준원 등 유관기관에 분산된 회계정보를 통합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내년 중으로 구축할 예정이다.
홍 본부장은 “연말 결산시즌인 만큼 회계 질의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온라인 플랫폼에는 기업들이 자주 묻는 질의회신 내용을 정리해 과거 사례를 참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감사 계약과 관련된 중소기업들의 불만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센터 조사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경우 자율수임 대비 감사보수가 100% 넘게 올랐다는 응답이 45%에 달했다. 인상률이 50~100%라고 응답한 기업이 21%, 30~50%라고 답한 곳은 12%로 나타났다.
홍 본부장은 “지난해 금융당국이 ‘지정감사 업무 수행 모범규준’을 만들었음에도 중소기업들이 대처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감사인에게 어떤 제약 요건이 있는지를 기업에 알리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중소기업계에서는 2018년 말 도입된 새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신외감법) 시행 이후 기업 측의 부담이 크게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중소기업 회계부담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고 회계 제도 전반을 정비하고 있다. 중소기업 회계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자산총액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를 면제하도록 했다.
회계업계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중소기업의 회계 부담 완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빅4' 회계법인인 삼일·삼정·한영·안진에서 각각 회계사 1명을 센터에 파견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한국회계기준원에서도 전문인력을 1명씩 지원했다.
일각에선 센터의 권한이 ‘중개’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계법인과 기업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센터가 이를 조정할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홍 본부장은 “회계지원센터가 생겼다는 상징성만으로도 회계법인이 주의할 수밖에 없고 분쟁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