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인 최모씨(42)는 부동산 시장에 급매물이 많이 나왔다는 소식에 '내 집 마련' 기회를 엿보고 있다. 최씨는 최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마음에 드는 급매물을 발견하고 집주인과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와 이야기를 마쳤다.
하지만 계약을 며칠 앞두고 집주인이 돌연 "팔지 않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이 팔 마음이 확정된 건 아니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최씨는 "뉴스에선 어디 아파트값이 수억원 하락했다고 나오는데 막상 시장엔 그런 매물도 많이 없다"며 "나와 있는 매물 중엔 매수심리를 알아보려는 '낚시성 매물'도 많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통계상에선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보다 집을 팔려는 집주인이 더 많은 '매수자 우위'가 지속되고 있지만 실제 시장에선 여전히 집주인이 '갑'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한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절세 등을 위해 급하게 내놓는 매물이 있지만, 원래 집값보다 싸게 내놓는 정상매물은 드물다"라고 설명했다.
21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12일) 기준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80.2를 기록해 전주(80.9)보다 0.7포인트 더 하락했다.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지난해 11월 셋째 주(15일) 기준선인 100 아래로 내려왔는데, 지난해 4월5일(96.1) 이후 31주 만에 100을 밑돈 것이다. 이후 이달 둘째 주까지 44주 연속 100을 밑돌고 있다.
지수는 부동산원이 회원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와 공급 비중을 지수화한 것이다. 100을 기준선으로 잡고 ‘0’에 가까우면 공급이 수요보다 많고, ‘200’에 가까우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단 뜻이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보다 팔겠다는 비중이 더 크단 얘기다.
현장에선 이를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 시장 분위기 자체는 침체한 것이 사실이지만 일시적 1가구 2주택자의 비과세 혜택을 위한 절세 매물이나 증여로 추정되는 직거래 등을 제외하면 여전히 집을 팔지 않으려는 집주인이 많아서다.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절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 하는 급매물을 제외하고는 집주인들이 크게 가격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며 "일부 집주인들은 팔 마음이 없는 데도 시장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매물로 내놓기도 한다. 거래가 성사될 것 같으면 매물을 내리는 집주인도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가격 하락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쏟아지고 있다. 급락했다는 소식에 지역 부동산에 문의해도 시큰둥한 분위기라는 것이다.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가격이 크게 내렸다는 뉴스 등을 보고 급매를 찾는 수요자들의 문의를 꽤 받았다"며 "정작 시장에서는 특수한 매물을 제외하곤 가격을 크게 조정하는 집주인들이 많지 않다. 일부 급매 거래가 시장을 대표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거래 절벽'으로 일부 소수 거래가 시장을 좌우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헬리오시티'에서도 최근 하락 거래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전체 가구 수(9510가구)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적은 숫자"라면서 "일부 집값이 수억원 하락한 것을 가지고 단지 전체 시세가 내렸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 않나"고 짚었다.
한편 서울 아파트 '거래 절벽'은 지속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계약일 기준 아파트 매매 건수는 지난 7월 643건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8월에도 현재까지 신고된 건수를 기준으로 562건에 그쳐 또다시 최소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신고 기한(계약 후 30일 이내)이 열흘가량 남아 있으나 지난달 25일 국내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 네 차례 연속으로 오르면서 부동산 거래 시장이 사실상 '빙하기'에 진입한 상황을 고려하면 남은 기간에 100건이 넘는 매매량이 추가 신고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달 들어서도 현재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신고 건수는 90건으로 100건을 밑돌고 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