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최대 난제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찹는 민관협의회가 네 번의 회의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참석자들은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대위변제는 안 된다"는 것에 합의했다. 대신 재단이나 기금, 한·일 민간기업 등 제3 조직에서 일본기업의 채무를 인수해 대신 갚는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 모색을 위한 '4차 민관협의회'가 외교부에서 조현동 1차관 주재로 5일 열렸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선 △강제징용 피해자 입장 △대법원 확정판결의 이행 △판결 이행의 주체와 지급 재원 △강제징용 대상자 확정 △일본의 사과 △추모·연구사업 등 추가조치 등 문제가 논의됐다.
피해자 측은 일본 기업의 배상과 사죄, 원고와 피고 간 직접 협상, 정부 예산을 사용한 대위변제 사용 불가 등 세 가지 중요 포인트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의 이행과 관련해선 "정부의 예산을 쓰는 대위변제는 적절치 않다"는 데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합의했다.
기존에 대위변제안은 일본 전범기업이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거부할 경우, 우리 정부가 나서 먼저 배상을 하고 그뒤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것이었다. 이 자리서 일부 법조계 참석자들은 대위변제의 한 방식으로 '병존적 채무인수'를 제시했다. 이것은 채무 인수 과정에서 원래 채무자의 채무를 면제하지 않고, 제3자(인수인)가 기존 채무자와 함께 채무를 인수하는 것이다. 법리적으로 채권자(피해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판결 이행의 주체로는 신설 재단 및 기금 등이 거론됐다. 또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 등 기존 조직을 사용하는 방법도 논의됐다. 한국 및 일본기업들이 이같은 조직의 재원 마련을 담당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사과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의 주체나 수위 등에 대해서는 결국 일본의 호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민관협 차원에서 구체적인 수준을 제시하기가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이 오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기업의 사과는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가급적 신속하게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 강조했다. 다만 일본과의 교섭 문제가 남아 있는 만큼 정부안 도출 시기에 대해 확답하지 않았다. 이달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한·일 정상간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어 이 경우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자리가 마련될 수도 있다.
외교부 측은 "이번 4차 협의회를 끝으로 같은 형식의 협의회는 열지 않을 예정"이라며 "그럼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자, 소송 대리인, 피해자 지원 단체와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