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해외 과학소설(SF) 명작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SF 3대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C 클라크의 주요 작품이 이때 번역됐다. 하지만 팬들의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SF 장르가 변방에 머무른 탓에 번역이 안 된 작품이 많았다. 올해 그 목마름이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SF 인기를 타고 올 들어 걸작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출간되는 SF만 10여 권에 이른다.
<내가 행복한 이유>(허블·사진)는 테드 창과 더불어 ‘하드 SF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호주 작가 그렉 이건의 중·단편 모음집이다. 하드 SF는 엄밀한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에 근거해 쓰는 SF의 하위 장르로, 작가들도 주로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이가 많다. 그의 단독 작품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학제 허블 편집팀장은 “SF가 국내에서 인기를 끈 게 얼마 되지 않은 데다 하드 SF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어 국내 소개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그가 1995년부터 2009년 사이에 발표한 작품 11편을 500여 쪽 분량으로 묶은 이 책은 출간 1주일 만인 최근 2쇄에 들어갔다.
1960~1970년대 활발히 활동한 세계적인 SF 작가 새뮤얼 딜레이니의 대표작 <노바>(폴라북스)도 올해 출간된 화제작이다. 미국 코넬대 영문학과 교수를 지낸 그는 전 세계 신화와 상징, 고전을 작품에 녹여내는 문학성으로 유명하다. 1968년 출간된 <노바>가 54년 만에 국내에 처음 출간된 데는 번역의 어려움도 한몫했다.
지난 4월엔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비채)가 소개됐다. 1993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우화 시리즈’를 여는 작품으로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2024년을 배경으로 한다. 30년 전 쓰였다고 믿기 힘들 만큼 현실의 비극을 정확히 담아내 2020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동구권 SF를 대표하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와 <우주 순양함 무적호>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가 폴란드어 원전 번역으로 나왔고, 러시아 출신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저주받은 도시>와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도 올해 출간됐다.
리스트는 더 길어질 예정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1973년의 단편집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이 이달 출간된다. 허블 출판사는 알렉산더 케이, 앤 차녹 등의 작품을 국내에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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