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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兆 들여 R&D단지…반도체 심장서 '초격차' 의지 다진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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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망상증 환자.” 미국 인텔이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를 두고 한 말이다. 당시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도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는 등 새로운 도전자를 폄하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괄시 속에서 경기 용인시 기흥캠퍼스에서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단지 기공식에서 40년 전 창업자가 남긴 반도체 사업에 대한 글을 소개한 것은 당시의 결연한 의지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지만, 미국과 중국 대만 일본 등의 추격과 견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병철 창업자의 유품

이 부회장은 기공식에서 창업자 집무실에 걸어뒀던 ‘반도체산업은 시장성이 클 뿐만 아니라 타 산업에 파급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란 글귀를 공개했다. 이 창업자가 당시 임직원으로부터 생일선물로 받은 ‘기흥사업장 모형도’도 사진을 통해 소개했다. 이 부회장이 창립자의 유지(遺旨)와 유품을 임직원 앞에 꺼내 든 것은 과거의 도전정신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초격차’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흥캠퍼스는 1983년 세계에서 세 번째 64K D램 개발을 시작으로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태동시킨 곳이다.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1992년 D램 시장 1위 달성, 1993년 메모리반도체 분야 1위 달성 등 '반도체 초격차'의 초석을 다진 곳이기도 하다.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환경은 녹록지 않다. 우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체인 ‘칩4’에 가입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칩4에 가입하면 주요 수요처인 중국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도 벽에 부딪힌 상태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2019년부터 18% 안팎에서 정체돼 있다. 경쟁사인 대만 TSMC가 꾸준히 50% 이상을 유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후발주자들의 공세도 매섭다. 최근 미국 마이크론은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YMTC(양쯔메모리)는 지난 6월 192단 낸드플래시 시제품을 고객사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미세공정 한계, R&D로 극복
이 부회장은 복합 위기의 해법으로 ‘기술’이란 키워드를 꺼내 들었다. 기공식 슬로건을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든다’로 정했고, 임직원에게도 초격차 기술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이 삼성전자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지 못하는 것은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있어서”라며 “살아남기 위해선 계속 기술 리더십을 지켜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삼성전자엔 차세대 기술을 통해 수익성을 방어한 전례가 적지 않다. 최근 사례 중엔 현재 널리 쓰이는 DDR4 대비 성능이 두 배 개선된 DDR5 D램이 눈에 띈다. 최근 D램 가격이 급락하고 있지만 DDR5 제품은 예외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등에 적합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현재 DDR5 D램은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이날 기공식에는 경계현 DS부문장, 정은승 DS부문 CTO(최고기술책임자), 진교영 삼성종합기술원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등 사장단을 비롯한 임직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임직원 간담회 뒤 반도체연구소에서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 R&D 진척 현황, 초격차 달성을 위한 기술력 확보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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