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업계 대표들과의 화상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 든 장면은 국가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세계 강국들이 잇따라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갖추기 위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유치 지원책이 나오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서 빠르게 움직였다. 대만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 미국 애리조나뿐 아니라 독일에도 신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인텔은 자국 내인 애리조나와 오하이오는 물론 독일에도 설비 투자를 하기로 했고, 중국 SMIC는 선전에 대규모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가 간 견제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최첨단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반입되는 것을 막고 있고, 러시아는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심화 등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와중에도 각국의 반도체 투자유치 경쟁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이처럼 세계가 빠르게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아쉽게도 메모리 반도체 최강국인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동안 국가 차원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각종 규제와 민원으로 투자가 쉽지 않았고 전문인력, 기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의 핵심 경쟁력이 취약해졌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광받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후발주자에 불과하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지난 21일 우리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산업 지원 대책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간 업계가 고민해온 인프라, 인력, 시스템 반도체, 소부장 등 관련된 내용을 총망라하고 있어 큰 힘이 돼줄 것이라고 본다. 우선,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에 속도를 붙일 수 있게 됐다. 산업 성장 속도에 비해 전문인력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업계는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하지만 이번 대책의 인력 양성 방안에 담긴 대학·대학원의 반도체학과 정원 증원, 반도체 아카데미 설립 등은 인력의 양적 확대는 물론 질적 향상도 가져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둘째로, 전력, 용수 등 필수 인프라 지원과 각종 규제 특례로 업계는 숨통이 트이게 됐다. 그동안 국내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 프로젝트는 계획보다 더 긴 기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주민 반발로 환경영향평가가 지연되거나 토지 및 지장물 보상작업이 미뤄지면서 전체 사업 진행이 발목 잡힌 사례도 꽤 있었다. 이처럼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이번 정부의 지원 대책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로, 우리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끌어올릴 기반을 다지게 됐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 드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타 팹리스’ 30개 회사를 선정해 설계부터 생산까지 개발 주기 전 과정에서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퀄컴이나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대표 팹리스 명단에 한국 기업도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산업 발전은 민관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기술 개발, 인재 양성의 주체는 기업과 교육, 연구기관이지만 반도체산업 경쟁력과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이제 정부 지원 방안이 추진력 있게 실행되기를 바란다. 관련 제도와 법률이 발 빠르게 만들어지고 제정돼야 할 것이다. 특히 국경을 넘어 우수 인력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만큼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교육, 연구기관이 손을 잡고 체결한 ‘반도체 산학협력 4대 인프라 구축 협약’은 국내 반도체 우수 인재 양성의 기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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