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될 당시 촬영된 영상을 18일 공개했다. 통일부가 이날 오후 기자단에게 공유한 영상은 약 4분 분량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보복에 골몰할수록 정권은 점점 더 추락할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날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의 실체를 조사하고 합당한 조처를 해달라는 진정도 국가인권위원회에 재차 접수됐다.
공개된 영상에는 탈북 어민들이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갈 당시 어민 1명이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땅에 찍으며 자해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를 호송하던 우리측 경찰특공대 등은 "야야야야", "나와봐", "잡아" 등의 이야기를 하며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이 어민은 호송인력에 둘러싸여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가듯이 군사분계선 앞으로 이동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북한 측에 인계되는 장면은 영상에 담기지 않았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 11일 이 사건에 대해 탈북 어민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과 북송 시 받게 될 여러 가지 피해를 고려할 때 북송 결정은 잘못됐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면서 이튿날 탈북 어민의 북송 당시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사진이 공개되자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등이 영상자료 존재 가능성을 거론하며 공개를 촉구했다. 이에 통일부는 판문점 북송 당시 현장에 있던 직원이 개인적으로 촬영한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 해당 영상을 국회 등에 제출할 수 있는지를 법률적으로 검토했다.
통일부는 사건 발생 직후에는 탈북 어민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하고 도주한 흉악범이란 점을 부각해 북송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현재는 북송 당시 사진과 영상을 잇달아 공개하면서 탈북 어민 귀순 의사의 진정성을 부각하는 등 사실상 입장을 번복했다.
野 "국민 감정선 자극하려는 취지…통일부가 그런 부처인가"
이같은 영상이 공개되자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정치보복수사 대책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선정적인 장면을 공개해 국민 감정선을 자극하려는 취지"라며 "통일부라는 부처가 과연 그런 일을 해야 하는 부처냐"고 비판했다.이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그런 용도로 쓰려 했지만 지지율은 더 추락했지 않느냐"며 "영상을 공개하든 뭘 공개하든 국민은 눈살을 찌푸린다. 먹고 살기 힘든데 정부가 이런 일에 혈안이 되는 것을 국민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본질은 넘어가는 장면이 아니라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느냐, 이탈 당시 순수한 귀순 의사를 가지고 있었느냐"며 "16명을 죽인 흉악범은 대한민국 국민과 공존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보낸 것으로, 국민의 판단이 내려진 사안"이라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지금 윤석열 정부가 진행해야 할 핵심 수사 영역은 민생수사"라며 "정치보복에 골몰할수록 정권은 점점 더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이날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불법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고, 무죄 추정의 원칙과 재판받을 권리 등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인권유린 사건"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인권위는 2020년 12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이 사건과 관련해 제기한 진정에 대해 "실체 파악에 한계가 있다"며 각하한 바 있다. 이에 한변은 각하결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올해 3월 인권위에 각하 결정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현재 인권위가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