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8일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결정 이후 닷새 만에 자신의 모습을 공개했다.
이 대표는 13일 SNS에 무등산 등반 사진과 함께 “광주에 했던 약속을 풀어내려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었는데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며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 앞으로도 무등산의 자락 하나하나가 수락산처럼 익숙해질 때까지 꾸준히 찾아와서 오르겠다”고 썼다.
이 대표는 윤리위로부터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뒤 공개 행보 없이 잠행을 이어왔다. 의원총회 등을 통해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 체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 호남으로 향한 이 대표는 여수, 순천 등 전남 일대를 순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을 돌며 틈틈이 지역 청년 당원들을 만나는 등 소통 자리도 마련했다. 호남에서 보수정당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서진(西進) 정책’을 상기시켜 자신의 당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메시지 정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13일에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호남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는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당분간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둘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대표의 이 같은 행보가 위기감의 발로라고 해석한다. 재심 청구나 가처분 신청 등이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가운데, 중징계 이후에도 청년 당원의 행동이나 당 지지율 하락 등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메시지 정치는 제도적·법적 투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대표가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성 상납 혐의에 대한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당내에서도 빠른 수사 진행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상당수 의원은 권 직무대행 체제를 과도기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조기 전당대회 개최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주장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당내 최다선(5선)인 조경태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를 구성해 전당대회 체제로 가서 새 지도부를 뽑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정진석 국회 부의장을 비롯해 김기현·안철수 의원 등 유력 당권 주자들도 겉으로는 “대세를 따른다”는 입장이지만 내심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