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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같던 미국의 이란 제재, '바이낸스'에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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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2018년부터 강화한 대(對)이란 제재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를 통해 뚫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란 암호화폐 트레이더들이 가상사설망(VPN)을 활용한 우회 접속으로 국제 금융 거래의 활로를 뚫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로이터는 이란의 암호화폐 트레이더들이 바이낸스를 통해 금융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암호화폐 트레이더들은 지난해 9월까지 바이낸스 계좌를 통해 거래를 이어왔다. 지난달 바이낸스가 자금세탁 방지 규정을 강화하면서 계좌 접근 권한이 사라졌다.

이란 테헤란에서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아살 알리자데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9월까지 2년여간 바이낸스를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해왔다”며 “거래소에서 신분 확인을 하지 않아서 다들 (차질 없이) 바이낸스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이란 테헤란에서 암호화폐 헤지펀드를 운용해 온 푸리아 포투히도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바이낸스를 활용해 펀드를 운용했다”며 “이메일 주소만 입력해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가상사설망(VPN)을 활용해 인터넷규악주소(IP)를 우회하며 출신 국가를 숨겼다. 2020년 북한 해커들이 암호화폐 계좌를 개설했던 방식과 비슷하다. 바이낸스는 되레 이용자들에게 VPN 활용을 부추겼다. 자오창펑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사진)는 2019년 “VPN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한 바가 있다.


바이낸스가 거래를 방관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란 트레이더들이 거래소 직원들과 나눈 문자 메시지에서 이란발(發)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몇몇 트레이더들은 이란 내에서 바이낸스의 인기를 나타내는 지표에 대해 ‘이란 보이즈’라는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란 제재 관련 규정을 강화했다는 바이낸스의 주장에 신뢰도가 떨어졌다. 바이낸스는 2018년 이란 출신 이용자의 계좌를 모두 청산할 거라고 공표했다. 이듬해 8월까지 이란을 제재 대상으로 간주했고 2020년에는 암호화폐 거래 ‘절대 반대’ 국가 명단에 올렸다.

미국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이란과 서방국가간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고 강력한 금융제재를 가했다. 이란 정부가 달러화를 매수하지 못하게 막고, 이란 화폐(리알) 송금, 이란 중앙은행과의 거래 등도 차단했다.

2011년부터 지속된 서방국가의 대이란 제재가 강화되자 이란의 경제난이 심화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1년 7781달러(약 1017만원)에 달했던 이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2282달러(약 298만 원)로 내려앉았다. 9년 만에 GDP가 3분의 1 이하로 급감했다. 세계 4위 원유 생산국이지만 자급자족 경제를 운영한 탓에 역성장을 이어온 셈이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자 이란 정부는 타협을 택했다. 지난 1월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부 장관은 2“필요하다면 미국과 직접 대화도 할 수 있다”며 처음으로 미국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JCPOA를 다시 복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미국 재무부는 이란의 석유를 수출하고 판매한 중국 기업을 제재하겠다고 지난 6일 발표했다.

미국 법조계에선 바이낸스가 미국 규제당국의 단속 대상이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본사를 흩뿌려놓고 거래소를 분할해 미국의 제재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바이낸스 지주사는 조세회피처인 케이맨 제도에 본사를 두고 있다. 바이낸스의 주 거래소에선 미국 사용자의 계좌를 개설하지 않는다. 대신 바이낸스US라는 별도 거래소에서만 거래하게 했다. 이 구조를 통해 바이낸스US만 관리 대상이 됐고 나머지 거래소는 감시망을 벗어났다.

관건은 세컨더리 보이콧(제삼자 제재) 여부다. 이란이 바이낸스를 통해 미국이 아닌 제3국과 거래했어도 바이낸스는 미국에서 퇴출당할 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로펌 페라리&어쏘시에이트의 대표변호사인 에리히 페라리는 “이란 이용자가 바이낸스에서 거래하는 걸 조장했거나, 이란과 거래하는 이용자를 방관했어도 미국 금융당국의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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