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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빔]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내연기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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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빔]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내연기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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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 공급난은 일시적, 내연기관으로 돌아갈 수 없어

 1894년 스웨덴의 과학자 스반떼 아레니우스는 대기 중의 탄소가 절반으로 줄어들면 기온이 떨어지고 반대로 탄소가 증가하면 기온도 오른다는 점을 추정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첫 예측이다. 물론 이전에도 탄소와 기온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노력이 있었지만 당시 기후변화는 불안이 아니라 희망으로 받아들여졌다. 탄소가 많을수록 빙하시대를 막아 추운 지역이 좋은 기후로 변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후 1938년 영국의 증기기관 엔지니어 스튜어트 캘린더가 영국 왕립기상학회에 작은 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스반떼 아레니우스가 주장한 탄소와 기온의 상관관계는 사실이며 탄소는 날씨가 아니라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설파했다. 이른바 '캘린더 효과(callendar effect)'다. 물론 스튜어트 또한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아레니우스의 주장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미국의 해양과학자 로저 르벨은 스튜어트가 말한 '캘린더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배출되는 탄소의 대부분이 해양에 흡수되는 만큼 기후와 큰 상관이 없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1950년대 태평양에서 벌어진 미국의 핵실험이 수온을 심하게 변화시키는 현상을 발견하고 해양이 흡수 가능한 탄소에 한계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어 르벨은 공기 속의 탄소 농도를 측정하려는 미국의 화학자 찰스 데이비드 킬링을 지원했다. 킬링은 정확한 탄소 농도 측정을 위한 장소를 물색했고 해발 3,340m에 위치한 하와이 마우나로아 화산 꼭대기에 기상 관측소를 세웠다. 그리고 남극의 리틀 아메리카 기지에도 측정 장비를 보냈다. 

 하와이 관측소에서 발견한 결과는 엄청났다. 스튜어트 캘린더의 예측은 정확했으며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증가는 분명한 사실로 판명됐다. 1959년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는 316ppm이었고 1970년은 325ppm, 1990년에는 354ppm으로 측정됐다. 이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 그 유명한 '킬링 곡선(Keeling Curve)'이다. 그리고 킬링 곡선의 예측에 따르면 21세기 중반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두 배로 증가한다는 예측 결과를 얻어냈다. 

 이때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은 급격하게 증대됐다. 일부에선 비과학적이며 기후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킬링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뉴욕, 워싱턴도 결국 물에 잠길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당시 기후변화는 온난화가 아니라 지구 기온이 내려갈 것을 걱정했다는 점이다. 얼어붙는 것이 먹고 살기에 보다 어렵다는 점에 기인했다. 하지만 온난화 또한 도시가 물에 잠기며 사라질 수 있었던 만큼 냉난화와 온난화는 뜨겁게 대립했지만 최종적으로 '기후변화'는 공통된 사실이었다.  

 1960년대 인공위성이 지구 대기권 밖에 자리를 잡고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세계적인 수학자 폰 노이만이 기계 연산 능력을 높이자 기후는 새로운 관점으로 분석됐다. 이른바 방대한 기온 데이터와 기후의 관계가 보다 극명해졌다. 그리고 1967년 기후모델링 분야의 권위자였던 도쿄대학의 마나베 교수와 미국 프린스턴 연구소 리처드 웨더럴드는 이산화탄소가 두 배로 증가할 때 지구 기온은 3~4도가 상승한다는 가설을 세웠고 이는 탄소 중립을 위한 기후변화 억제의 도화선이 됐다. 
 
 실제 1985년 영국의 남극조사단은 나사가 제공한 위성 자료에서 남극 상공 오존층에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오존이 없으면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돼 위험했던 만큼 1987년 캐나다 몬트리올에 24개 국가가 모여 프레온가스 사용 제한을 협약했다. 그리고 1988년 여러 나라가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일명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를 창설했다. 그리고 IPCC는 1차 기후변화 보고서를 시작으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차례의 보고서를 발표했고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최종적으로 각 나라가 탄소 감축을 합의했다. 

 이후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의 속도는 무척 빨라졌다. 심지어 지나치게 속도를 높인 나머지 배터리 가격의 폭등마저 불러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싼 소재를 배제하려는 기술이 등장했다. 이른바 '코발트 프리' 배터리다. 다시 말해 당장의 어려움을 기술로 극복하려는 흐름이다. 그리고 기술 혁신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진행형이다. 당장은 고비용이 부담이지만 결국 기술이 비용을 낮춘다는 점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이미 대세로 굳어가는 모양새다. 그리고 '전환'이라는 단어 뒤에는 기후변화 억제라는 인류의 지상 대명제가 자리하고 있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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