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CEO의 예언, 이미 돌입 중
"주력 배터리 전기차(BEV)의 가격대가 3,000~3,500만원에 형성되면서 전기차 가격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달 초 포드의 짐 팔리 CEO가 남긴 말이다. 배터리 전기차(BEV) 시장 또한 소비자들의 구매 여력을 감안했을 때 2만5,00달러 가량의 제품이 가장 적합하다며 해당 부문에서 BEV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진다는 예언이다.
짐 팔리의 이런 예측은 현재 등장하는 BEV 가격에는 내연기관 대비 전기차의 프리미엄 가치가 포함됐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전기차의 생산 제약, 낮은 재고율, 강력한 수요 덕분에 BEV에 일종의 프리미엄이 형성됐다는 것. 그러나 몇 년 내에 생산 비용이 크게 절감되고 2만5,000달러 수준의 대중적인 BEV가 쏟아지면 결국 가격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특히 전기차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부문은 기업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소재 전환 및 밀도 향상 등을 통해 가격을 크게 낮출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그의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GM은 배터리 리콜 이후 6개월 동안 판매를 중단했던 미국 내 쉐보레 볼트(BOLT) EV 가격을 6,000달러 내린 2만6,000달러로 결정했다. 볼트 EUV 또한 2만8,000달러의 MSRP(Manufacturer's Suggested Retail Price, 제조사 권장가격) 가격표를 붙였다. 이를 통해 단기간 BEV의 선두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폭스바겐그룹 또한 오는 2025년 내놓을 ID 라이프 BEV 가격을 2만4,000달러 수준에 맞추기 위해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도 당장은 배터리 가격 인상에 따라 2만5,000달러 제품을 포기한 것 같지만 결국 시장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예측에는 각 나라가 지급하는 전기차 보조금이 사라진다는 조건을 갖고 있다. 지금은 시장 초기 상황이어서 국가마다 경쟁적으로 보조금을 투입, 모빌리티 에너지 전환기의 산업적 우위를 점하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다. 결국 보조금이 없는 상황에서 제조사마다 2만5,000달러 제품에서 수익을 내려면 다양한 원가절감 방법이 전개되고 여기서 얻어진 결과물이 가격 전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리고 원가절감의 대표적인 사례가 소재 확보다. 중국 BYD는 6곳의 리튬 광산 인수 계획을 밝혔고 스텔란티스 또한 캘리포니아 지역 내에서 배터리용 리튬 확보에 나섰다. 현대차도 최근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에 직접 투자를 단행했으며 폭스바겐그룹도 호주와 중국 등의 배터리 소재 광산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테슬라는 이미 소재의 장기간 공급 확보를 위해 글로벌 곳곳의 원자재 기업과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리튬은 중국, 코발트는 콩고, 니켈은 호주와 브라질 등에서 장기 조달하는 방식이다.
일부에선 당장 치솟는 배터리 가격을 감안할 때 2만5,000달러 전기차 공급이 가능하냐는 질문도 던진다. 그러나 완성차업계에선 지금의 배터리 소재 가격 상승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탄소 배출 규제에 따른 탄소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모든 자동차기업이 전기차 제조에 뛰어들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통과 의례로 여기는 중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동차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투자 여력에서 결정된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내연기관을 BEV로 전환할 때 소요되는 비용을 누가 더 많이 확보했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토요타는 BEV 속도를 내지 않지만 30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토대로 일시적인 전환을 꾀할 수도 있다. 반면 테슬라는 쌓아 둔 자산이 없어 서둘러 규모를 키우는데 집중한다. 원가 절감의 기본이 곧 양적 팽창인 탓이다.
결국 각자 방식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흐름에 비추어볼 때 모든 완성차기업의 전기차 기본 전략은 대량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동시에 투자 여력은 최대한 내연기관에서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내연기관 제품 고급화를 통해 수익을 높이고 이를 다시 전기차에 투자하는 순환이다. 그러면서 차츰 전기차 수익 향상을 통해 전환을 이루면서 대중적인 2만5,000달러의 전기차 시장에 안착해야 한다. 포드 CEO의 예언(?)도 결국 BEV의 대중적인 확산 단계에서 기업의 생존이 결정된다는 점을 걱정해야 한다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권용주(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