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등 해운강국을 중심으로 조선·해운 관련 환경 규제를 보다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량을 2008년 대비 50% 줄인다는 기존 규제를 더 강화하고 벙커C유 등 연료유에 대해선 생산부터 이송 등 전 과정에서 탄소중립 이행을 요구하는 식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6~10일 열린 국제해사기구(IMO) 제78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78)에서 논의된 내용을 15일 발표했다. IMO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로 국제 해운 분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감축을 담당하는 규제기구다. IMO이 어떤 규제를 마련하는지에 따라 조선·해운업계 내 업체간 명운을 가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이번 회의에선 205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08년 대비 50%보다 더 높게 상향하는 방향과 이행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현재 IMO의 온실가스 감축전략은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40% 개선하고, 2050년까지 배출 총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었는데, 이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셈이다.
IMO 내에서 발언권이 센 그리스, 덴마크 등 유럽연합(EU) 해운국들은 이를 이행하기 위해 선박연료유의 생산부터 이송, 연소까지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술적으로 규제하는 연료표준제도, 탄소부담금, 그리고 배출권거래제 등을 제안했다. 선박의 에너지 효율성과 탄소 배출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하는 에너지효율지수(EEXI), 탄소집약도(CII) 등 내년부터 시행되는 기술적 규제에 더해 친환경선 운영 비율이 낮아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선사에 직접적으로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규제 마련에 나선 셈이다.
해수부는 이 같은 해운 강국들의 요구가 국내 해운업계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이번 IMO 회의에선 EU, 미국 등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을 비롯해 액화천연가스(LNG)등 대체 연료를 선박 연료로 활용하는 비중이 높은 자국 선사에 유리한 연료표준제도 도입을 주문했다. 반면 개발도상국 그룹은 현 단계에서 감축목표 상향이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IMO는 내년 상반기까지 추가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지만 해수부는 “더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목표 채택과 규제가 도입될 것”이라며 규제 강화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어떤 결론이 나든 국내 선사들의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해수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외항 선박 1084척 중 약 71%인 770여척이 당장 내년 도입되는 EEXI 규체 충족도 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이후 발주한 대형 컨테이너선 전량을 LNG등을 대체연료로 사용하는 친환경선으로 채운 머스크, MSC등 글로벌 선사와 달리 HMM을 비롯한 국내 선사들은 여전히 벙커C유를 쓰는 디젤 선박에 의존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한국 입장에선 온실가스 배출량의 양적 규제보다는 탄소세와 같은 예측 가능성 있는 가격 부담 방식이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라며 “최대한 한국에 유리하도록 의견을 개진하고 있지만 IMO에서의 유럽 내 입김이 세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