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인 평택캠퍼스에서 첫만남을 가졌을 때 전세계의 이목을 끈 것이 또 있었다. 바로 두 대통령이 방명록 대신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인 웨이퍼에 서명을 한 것이다. 두 정상이 반도체를 통한 경제안보 동맹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두 대통령이 서명한 웨이퍼는 누가 만들었을까.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이긴 하지만 웨이퍼를 만들진 않는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두 정상이 서명한 웨이퍼는 국내 기업인 SK실트론의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퍼는 쉽게 말해 반도체를 그려넣는 도화지 역할을 한다. 웨이퍼의 주성분은 실리콘(규소)이다. 모래에서 추출한 실리콘을 뜨거운 열로 녹여 실리콘 용액을 만든 후에 굳히면 원뿔 모양의 ‘잉곳’이 된다. 이 잉곳을 얇게 잘라내 원판의 웨이퍼를 만든다. 이 웨이퍼를 얼마나 불순물 없이 매끄럽게 만들 수 있느냐가 웨이퍼 제조사의 핵심 기술력이다.
코로나19 이후 가전과 자동차, 개인용 컴퓨터(PC)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다. 덩달아 웨이퍼 수요도 늘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웨이퍼 재료 시장은 전년 대비 15.5% 성장한 404억달러(약 49조원)로 파악됐다. 웨이퍼 제조사가 가격을 올려도 물량을 확보하려는 반도체사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웨이퍼 시장은 SK실트론과 신에츠, 섬코, 대만 글로벌웨이퍼스(GW), 독일 실트로닉이 전체 시장의 94%를 차지하고 있다. SK실트론은 지난해 말 기준 300mm 웨이퍼 분야 세계 3위다. 점유율을 보면 일본 신에츠는 29.80%, 2위인 섬코는 24.80%다. SK실트론은 18%로 1,2위 업체와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SK실트론의 웨이퍼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계자들이 매일 SK실트론으로 전화해 물량을 확인하고 있다"며 "공장 앞에 줄을 서서 물건을 사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SK실트론은 이참에 대규모 투자도 단행하기로 했다.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수주한 웨이퍼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과 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다. SK실트론은 지난 3월 본사가 위치한 구미국가산업단지 3공단에 3년간 총 1조 495억원을 투자해 최첨단 반도체 웨이퍼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공장 증설 부지 규모는 4만2716㎡(1만2922평)로 올해 상반기 기초공사를 시작해 2024년 상반기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투자 결정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웨이퍼 수요 급증과 고객사의 지속적인 공급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 센터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반도체 수요가 많은 5G, EV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장용호 SK실트론 장사장은 "이번 증설 투자는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민첩한 대응을 위한 도전적인 투자”라며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과의 협업을 통한 기술 혁신으로 고품질의 웨이퍼 제조 역량을 갖춰 글로벌 웨이퍼 업계 리더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