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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3천켤레' 필리핀 이멜다…대통령 어머니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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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독재와 부정 축재로 축출됐던 마르코스 일가가 36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1965년부터 21년간 장기 집권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65)이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10일 필리핀 ABS-CBN뉴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비공식 집계를 인용해 개표율 95% 수준에서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가 3033만9026표를 득표했다고 보도했다. 2위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1444만8183표)을 1500만 표 이상 앞섰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는 이달 말 공식 결과 발표를 받고 오는 6월 30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아버지인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말로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반대파를 고문하는 등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았다. 그의 가족은 100억달러(약 12조원)가량을 부정 축재했다는 불명예도 떠안았다. 마르코스 일가는 1986년 민중봉기(피플파워)로 축출돼 하와이로 망명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9년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독재자가 세상을 떠나자 필리핀 대법원은 1991년 마르코스 일가를 사면했다. 고국에 돌아온 이들은 본거지에서 세력을 키웠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는 가문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루손섬 북서부 일로코스노르테에서 하원의원, 주지사, 상원의원을 지냈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는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를 적극 공략했다. 틱톡, 유튜브 등 20대가 애용하는 SNS를 통해 포퓰리즘 정책을 홍보했다. 마르코스 일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려는 전략이었다. 이 덕분에 지난 2월 여론조사에서 18~24세 필리핀 국민의 71%가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를 지지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 승리 덕에 이멜다 마르코스(92)도 말라카냥궁(대통령궁)에 입성하게 됐다. 1980년대 ‘사치의 여왕’으로 불린 이멜다는 남편인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축출된 원인 중 하나였다.

그가 화제가 된 건 1986년 시위대가 말라카냥궁을 점거했을 때였다. 이멜다의 향락과 사치가 속속 드러났다. 궁에서 드레스, 장신구, 명품백 등 각종 사치품이 발견됐다. 여성 신발만 3000켤레가 넘었다. 황급히 궁을 떠난 이멜다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었다. 2003년 제작된 이멜다 전기 영화에는 “이멜다는 8년 동안 매일 구두를 갈아신었다. 하루라도 같은 구두를 연속해 신은 적이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필리핀 법원은 부정 축재 재산 은닉 혐의로 이멜다에게 11년형을 선고했다. 이멜다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뒤 항소했다. 필리핀 대법원은 이멜다의 재판을 지금까지 계속 연기해왔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압승하면서 이멜다를 처벌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는 관측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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