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코로나 봉쇄’와 글로벌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공급망이 경색되자 국내 완성차·배터리 업체들이 공급망 새 판을 짜고 있다. 조달 지역과 기업을 다변화하는 한편 협력사에만 맡기지 않고 직접 원료 확보전에 뛰어드는 등 공급망관리(SCM)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현대차 “협력사 원료 의존도 줄일 것”
1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최근 구매본부 내에 산재해 있던 원재료 구매담당자들을 한데 모아 별도 전담팀을 꾸렸다. 전기차 부품에 들어가는 주요 광물 확보가 업계의 당면 과제로 떠오르자 직접 원료 구매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협력사 자체 조달 원재료에 의존했던 기존 방식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며 “(현대차가) 직접 관리하는 원재료를 확대하는 쪽으로 근본적 방향을 설정하겠다”고 말했다.현대차는 협력사들의 생산 지역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중국발 봉쇄 리스크를 타개하는 한편 공급망을 재편해나가고 있다. 와이어링하네스 협력사들의 중국 밖 공장 증설을 적극 지원하고 물량을 이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와이어링하네스 조달처를 필리핀·캄보디아·베트남 등으로 다변화하고 중국 조달 의존도를 코로나19 이전 95%에서 최근 60% 수준으로 낮췄다. 중국 상하이 근처 우시 지역에서 들여오던 에어백컨트롤유닛(ACU) 조달처도 캐나다로 전환했다.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공급망 다변화로 부품을 제때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배터리사도 소재업체 ‘그립’ 강화
배터리셀 업체들도 소재 협력사 관리를 강화하는 등 SCM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소재 협력사 대신 글로벌 광물업체와 직접 계약해 원료 광물인 리튬을 확보하는 소위 ‘사급(구매자가 원재료를 조달해 판매자에게 공급)’ 방식을 확대하는 게 대표적이다. A배터리사는 최근 직접 조달한 리튬을 원 협력사인 B 양극재업체가 아닌, C사로 돌렸다. B업체보다 C사가 확보한 원료 물량이 달리는 상황에서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터리셀 회사가 조정에 나선 것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생산하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에서 B소재사로선 억울할 수도 있다”면서도 “배터리 업체들이 소재사에 대한 ‘그립’을 강화하는 쪽으로 공급망 관리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원료 확보가 업계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회사 내 구매조직에 힘이 실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가 구매 기능을 확대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구매 부품 수가 많았던 내연기관 시대와 비교해 전기차 시대엔 구매조직이 축소될 것이란 일각의 전망과 다른 흐름이다.
이는 국내만의 흐름은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 글로벌사업담당(GMI) 사장에 구매 전문가가 연이어 임명된 게 대표적 예다. 지난달 새로 임명된 실판 아민 사장과 전임 스티븐 키퍼 사장은 모두 GM에서 글로벌 구매·서플라이체인 담당 부회장을 지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