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당선인은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현 정부가 2018년 상향한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50%에서 30%로 낮추는 대신 ‘주거 환경’(15%→30%), ‘건축 마감·설계 노후도’(25%→30%) 등의 배점을 높여 안전진단 통과를 쉽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전진단 평가 기준 변경은 법 개정 없이 국토교통부 시행령·행정규칙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재건축 가능 연한(준공 후 30년)을 채웠지만 아직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서울 아파트 30여 만 가구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목동신시가지 2만 가구 재건축 청신호
1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국토안전관리원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본지가 시뮬레이션한 결과, 윤 당선인 공약대로 안전진단 평가 항목별 가중치를 변경할 경우 2018년 이후 안전진단(적정성 검토)을 시행한 전국 31개 단지 중 27곳(87.1%)이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안전진단은 △구조 안전성 △주거 환경 △건축 마감·설계 노후도 △비용 등 네 가지 항목에 가중치를 둬 평가하는 방식이다. 총점 100점 만점에 55점 이하(D등급 이하)를 받아야 재건축이 가능하다. 붕괴 위험을 따지는 구조 안전성 항목은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요소로 꼽힌다.
평가 항목 가중치를 바꾸면 목동신시가지9단지의 종합 점수는 기존 58.55점에서 52.90점으로 낮아진다. 목동신시가지11단지(58.78점→53.89점)와 태릉우성(60.07점→54.25점), 미성(60.23점→53.68점)도 합격권에 든다. 국토부도 자체 추계로 이와 동일한 결과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양천구와 노원구는 재건축 연한을 넘겼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목동신시가지9·11단지가 안전진단에서 탈락한 뒤 총 2만6629가구 규모인 목동신시가지 재건축은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목동신시가지 14개 단지 중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곳은 6단지가 유일하다. 목동신시가지11단지와 태릉우성 등은 규정이 완화되는 대로 안전진단을 다시 신청할 계획이다.
○고덕주공9 등은 완화해도 ‘탈락’
구조 안전성 배점이 낮아지더라도 광진구 ‘광장극동1·2차’(70.43점→60.90점, 1344가구),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62.70점→58.51점, 1320가구), 구로구 ‘동부그린’(62.46점→56.95점, 174가구) 등 3개 단지는 안전진단 통과가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단지의 구조 안전성 점수는 70점대 중반~80점대로 60점대인 목동신시가지9·11단지와 태릉우성보다 월등히 높다.
재건축 사업 주체인 조합 설립 전에 거쳐야 하는 안전진단은 주민들이 직접 돈을 걷어서 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한 번 떨어지면 재도전이 어렵다. 목동신시가지9단지는 2020년 안전진단을 받기 위해 주민들에게서 약 3억원을 모금했다. 이 아파트 관계자는 “‘100% 통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주민들을 다시 설득해 안전진단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목동과 노원구 상계동 일대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구조 안전성 비중을 20~25%로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20%까지 낮추면 목동신시가지9·11단지 총점은 40점대 후반~50점대 초반으로 떨어지고, 구로구 동부그린(62.46점→54.57점)이 추가로 합격선 안에 들게 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시행령 개정만으로 완화가 가능한 만큼 당초 약속대로 안전진단 기준부터 낮춰 수도권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